[뉴스의 맥] 일본 제조업 파견 허용 후 5년간 일자리 137만개 생겼다
뿌리산업 근로자파견 논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을 둘러싼 공방이 파열음을 내고 있다. 파견법 개정안은 주조·금융·용접·소성가공·열처리·표면처리 등 ‘뿌리산업’과 고소득 전문직,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에 대한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뿌리산업은 국내 제조업 생산에 필요한 핵심 산업으로, 2011년 기준 기업체 수는 2만4997개며 이 중 중소기업이 2만4980개로 99.9%를 차지한다. 현행 근로자 파견은 행정·서비스 등 32개 업종, 197개 직종에 허용돼 있는데 정작 수요가 몰리는 제조업의 파견 근로자 사용은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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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정부와 여당이 뿌리산업 업종의 대기업 파견 금지와 사내하도급 제한을 개정법안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노동개혁이 전면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근로자 파견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뒤,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파견계약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 지휘 아래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파견법 제2조1호). 이런 근로자 파견은 근로자공급계약에 따라 근로자를 타인이 사용하게 하는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한다(직업안정법 제2조의2 제7호). 근로자공급사업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할 수 없으며(동법 제33조1항),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하는 중간착취 배제 금지(근로기준법 제9조)에 해당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파견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근로자파견사업은 금지되는 근로자공급사업에서 제외되고(직업안정법 제2조의2), 법률에 의한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는 것은 중간착취배제금지에 해당하지 않으므로(근로기준법 제9조) 파견법에 의한 근로자 파견이 허용되는 것이다. 이 같은 파견근로는 건설공사 현장이나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에서는 금지돼 있고, 법령에서 규정하는 업무에만 허용되는 구조다(파견법 제5조).

한국과 프랑스만 파견확대 주저

근로자 파견은 1940년대 미국 회계사사무소에 임시직 서비스에 해당하는 회계사의 파견으로 시작, 1970년대까지는 주로 일시적 결원의 대안으로 활용됐다. 1980년대부터 글로벌 경제환경이 바뀌면서 프로젝트성 전문직 인력 공급부터 대단위 업무서비스 공급으로 확장, 적기에 전문인력이나 맞춤형 인력 공급이란 인재파견산업으로 발전했다. 세계적 인력파견·관리업체인 미국 맨파워가 대표적이다.

파견근로자는 인건비 절감 요인이 큰 기간제근로자와는 다른 비정규직 사례에 해당한다. 독일 등에선 파견회사가 전문직 파견과 함께 숙련 인력을 찾지 못했거나 경쟁력 없는 연봉, 불리한 입지 등의 영향으로 고용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한 채용대행 역할도 담당한다.

이런 인력 공급의 필요성에서 근로자파견 관계법제도 크게 변화해 왔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처음부터 시장에 맡기면서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았지만 독일과 일본은 규제적인 파견법의 유연성을 높여왔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근로자 파견은 중간 착취에 해당하고 정규직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 가급적 파견근로자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정규직 고용만으로는 산업경쟁력 제고와 고용 창출에서 한계에 부딪히게 돼 파견근로 대상을 확대하거나 사용기간을 수차에 걸쳐 연장했다.

근로자파견 효과 본 일본과 독일

파견법 개정의 절정은 2002년 독일의 ‘하르츠개혁’과 2003년 일본의 제조생산공정 파견근로 허용이다. 독일은 하르츠개혁을 통해 마지막 파견근로 규제인 사용기간을 완전히 걷어냈다. 일본은 2003년 제조업생산공정에 대한 파견 규제를 철폐했다. 오늘날 파견근로자 사용을 주저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와 한국을 제외하면 보기 어렵다. 그만큼 글로벌 노동환경이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파견근로 확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강하다.

파견근로를 둘러싼 핵심 이슈는 △파견근로자와 정규직 간 차별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파견근로의 허용은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되는가 △파견근로 확대는 정규직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가 등이 꼽힌다. 파견근로에 대한 차별금지 문제는 대부분 국가에서 안전장치를 보완하면서 부정적인 요소를 해소하고 있다. 파견근로가 일자리 창출에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와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독일과 일본이 긍정적인 실증 사례를 보여준다.

일본의 파견근로 활성화는 고용 창출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이 2003년 제조업에 대한 파견을 허용한 뒤 2004~2008년 창출된 일자리는 137만개를 헤아린다. 2004년 임금근로자의 2.5%에 해당한다. 2015년 기준 한국 임금근로자 1923만명 대비 48만명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 이 기간 임금근로자는 약 42만2000명 늘었는데 파견근로자는 27만4000명가량 증가했다. 파견근로자를 제외한 임금근로자 증가가 과거 평균을 크게 웃돈 것이다. 제조업 파견 허용이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기우였다는 증거다.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주요 선진산업국가에서 파견근로 활용에 따른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나타난다. 최근 독일에서는 사용기간 규제가, 일본에서는 제조공정에 대한 파견 금지가 다시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입법으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독일과 일본에서 파견근로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와 달리 한국의 파견법은 제정 이래 파견근로 활용과 관련한 변화는 거의 없었고,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조치는 강화돼 왔다. 차별 시정에 대해서는 적어도 일본보다 우월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숙련인력 공급 측면 주목해야

국내 정규직 고용 여건이 녹록지 않다. 파견근로 활성화를 통해 고용을 늘리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파견근로자의 고용불안 우려는 파견사업 허가 요건을 강화·보완하거나 감독을 강화해 해결할 수 있다. 파견근로에 대한 규제를 걷어낸 독일 등의 경험을 보면 파견근로자의 최대 사용률은 전체 고용률의 3%에도 미치지 않아 정규직 대체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근로자 파견이 맞춤형 취업 알선과 양질의 인력 공급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활성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뿌리산업 파견 확대에 한정된 파견법 개정안이 논의됐으나 이를 축소 처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렇게 되면 파견근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더 확산될 것이고 일자리 창출의 동력원이 될 수 있는 파견근로 확대 여지는 더 좁아질 것이다. 늦었지만 어렵게 마련한 개정안을 통과시켜 건강한 파견시장과 경쟁력을 갖춘 파견회사 양성의 토대를 닦아야 한다. 고용의 질 문제는 차별시정 노력과 파견회사의 허가 요건 강화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상희 <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