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 후보경선 2차 관문인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대표적 ‘아웃사이더’(워싱턴식 정치를 반대하는 후보권)로 꼽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 자칭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압도적 표차로 승리하면서 대선 경선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민주당에선 샌더스 의원이 확실하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항마로 자리잡으면서 경선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장기전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다.

공화당은 트럼프가 다른 주자들과의 격차를 배 가까이 벌리며 승리함으로써 트럼프에 대항한 연합전선이 형성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대선 '70대 아웃사이더' 돌풍…"기성 정치인에겐 끔찍한 밤"
◆뉴햄프셔, 대의원 수 적지만 상징성 커

뉴햄프셔에서 뽑는 대의원은 민주당은 총 4763명 중 24명, 공화당은 2472명 중 23명으로 각각 1%도 안 된다. 총 대의원의 과반을 확보해야 당 대선후보로 결정되는 주자에게는 뉴햄프셔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952년 이후 치러진 16번의 공화당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1등이 당 대선후보가 된 경우는 13번(81.3%)에 달했다. 민주당은 16번 중 9번(56.3%)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승자가 대선후보로 이어졌다.

CNN은 이날 투표마감 직후 샌더스와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민주·공화 양당의 기성 정치인에게 끔찍한 밤이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출마 당시만 해도 극단적인 공약으로 주목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에게 양당 주류 주자들이 뉴햄프셔에서 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3월까지 대세론 이어갈까

트럼프는 이날 승리로 지난 1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에게 당한 패배의 불명예를 씻고 대세론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게 됐다.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인기가 표로 연결되지 않았다”며 “트럼프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14개주에서 동시 경선이 치러지는 슈퍼화요일(3월1일)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느냐다. 공화당은 오는 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와 23일 네바다 코커스를 연다. 이 중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은 득표율에 따라 대의원을 나눈다. 그러나 공화당은 득표비례제와 승자독식제를 혼용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공화당 1위는 대의원 50명을 독식한다. 1월 말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36.0%의 지지율로 크루즈(19.7%)와 마코 루비오(12.7%)를 크게 앞섰다. 미 언론은 트럼프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하면 다른 주자 간 합종연횡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샌더스, 소수계 지원 이끌어내야

민주당은 샌더스 의원의 반격으로 앞으로 치열한 선두 경쟁이 예상된다. 샌더스 의원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불과 0.3%포인트 차로 클린턴 전 장관에게 뒤졌으나 이번엔 20%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승리했다. 샌더스 의원은 승리를 확정한 뒤 연설에서 “이번 승리는 유권자가 진짜 변화를 갈망함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직면한 엄청난 위기를 고려할 때 낡은 기성 정치권과 경제계에 (미국을 맡기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초반 열세를 딛고 승리를 얻은 기세를 이어간다면 클린턴 전 장관의 조직력을 누르고 경선 승리도 거머쥘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경선 일정이 그에게 녹록지만은 않다. 뉴햄프셔와 달리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선 클린턴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CBS가 민주당 유권자 388명을 대상으로 1월 말 시행한 조사에서 클린턴은 60% 지지율로 샌더스(38%)를 배 가까운 차로 따돌렸다. 네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는 “샌더스가 소수 인종과 노인, 여성층 등 약한 지지 기반을 보강할 수 있느냐에 경선 승리 여부가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