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허용…'유전자 가위' 활용 나선 영국
영국 정부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간 배아의 DNA 일부를 잘라 교정하는 연구를 승인했다. 동물 실험을 통해 유산의 원인이 된다고 알려진 유전자가 사람의 몸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는지 밝히기 위해서다.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 연구 시도 자체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국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허용…'유전자 가위' 활용 나선 영국
영국 인간생식배아관리국(HFEA)은 “캐시 니아칸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박사 연구팀의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를 허가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중국 연구진이 버려진 배아로 유전자 교정 연구를 진행한 적은 있지만, 국가기관이 승인해 진행하는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쥐와 원숭이 실험을 통해 배아의 성장과 착상을 방해한다고 밝혀진 ‘OCT4’라는 유전자가 실제 인체에서도 같은 기능을 하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난임 치료 연구에 획기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연구팀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연구에 활용하기로 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비정상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기술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꼽은 지난해 ‘세계를 뒤흔든 10대 과학기술’ 중 하나다. 유전자를 자르는 기능이 있는 단백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위’라는 표현이 붙었다. 연구팀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배아의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해 OCT4의 기능을 밝힐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배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 연구를 허용한 것이 “맞춤형 아기를 찍어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영국 정부는 “유전자 교정을 거친 배아는 14일 내 폐기하고 자궁에 착상시켜서는 안 된다”고 엄격한 조건을 달았다. 유전자가 교정된 배아가 태아로 자라 아기로 태어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영국의 이런 움직임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세계에서 앞서 가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은 “한국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물론 징크핑거, 탈렌 등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유전자 가위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배아를 활용한 유전자 교정 연구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 단장은 “배아를 대상으로 한 순수 연구조차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라 챈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결정이 다른 나라에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며 “(국가가 원한다면) 연구를 제대로 감독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