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21, 반대 3.”

한국시간 10일 오전 6시30분.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 투표 결과가 발표된 순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FDA는 셀트리온이 신청한 바이오시밀러(항체의약품 복제약) 램시마의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9시간30분간의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서 회장은 새벽부터 일어나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최종 투표 결과를 지켜봤다. 그는 “한국 바이오산업 경쟁력을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정받은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정진의 바이오시밀러 ‘무모한 도전’

서 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2등은 의미가 없다”며 선점 전략을 강조했다. 그는 “오리지널 항체의약품보다 가격이 싼 바이오시밀러는 먼저 시장에 나온 제품이 파이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시장 진입 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무도 개발에 나서지 않던 2005년, 서 회장이 바이오시밀러에 올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던 서 회장은 우연히 항체의약품 특허가 2014년 전후에 대거 끝난다는 정보를 들었다. 항체의약품과 효능이 비슷하고 가격은 35% 이상 싼 바이오시밀러의 잠재력을 깨달았다.

그의 도전에 대해 국내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생산성연구원 컨설턴트와 대우자동차판매를 거친 그의 이력은 부정적인 꼬리표가 됐다. ‘바이오 문외한이 무슨 바이오시밀러 개발이냐’는 시각에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그를 외면했다.

2010년 싱가포르 테마섹에서 3500억원을 유치한 것을 비롯해 약 1조4000억원을 해외에서 조달했다. 인천 송도에 공장을 짓고 5년 넘게 걸릴지도 모르는 해외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개발에 뛰어든 지 7년 만인 2012년 7월 세계 최초로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국내 허가를 따냈지만 의심의 눈길은 가시지 않았다. 2012년에는 셀트리온이 생산한 램시마를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매입한 ‘허위 매출’ 문제가 불거지면서 회사가 흔들렸다. 여기에 공매도 세력의 공격까지 더해지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2013년 4월 기자회견을 열어 공매도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금융당국까지 함께 비판하는 바람에 검찰 조사를 받는 후폭풍을 겪기도 했다.

2014년은 서 회장에게 행운의 해였다. 6월 유럽의약품청이 셀트리온 램시마에 대해 승인 권고 결정을 내렸다. 3개월 뒤인 9월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셀트리온의 기술력과 서 회장의 비전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며 주가가 급등한 것은 이때부터다.

창립 멤버인 김형기 셀트리온 사장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투자에서 개발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R&D) 속성을 모르는 이들의 부정적 시각을 버텨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해외에서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유치했으니 진짜 애국자 아니냐”며 “국내에선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K바이오시밀러’ 글로벌시장 공략 탄력

램시마의 미국 허가는 셀트리온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 못지않게 국내 바이오업계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바이오시밀러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해외 시장 공략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승인 권고는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미국이 바이오시밀러에 대해 우호적으로 돌아섰다는 의미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6종(2014년 517억달러)의 항체의약품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있다. 속도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글로벌 투자기관인 웰스파고는 “오리지널 항체의약품보다 가격이 싼 바이오시밀러가 항체의약품 대체약품으로 급속히 시장을 파고들 것”으로 전망했다.

■ 바이오시밀러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항체의약품을 복제해 동등한 품질로 생산한 의약품이다. 화학구조가 같은 복제약(제네릭)과 달리 오리지널 항체의약품과 비슷한 단백질 구조로 유사한 약효를 보이기 때문에 바이오시밀러라고 부른다. 개발에 1조원이 넘게 드는 오리지널 항체의약품에 비해 개발비가 2000억원 안팎이고 가격은 30~40% 정도 싼 것이 경쟁력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