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통보를 받았을 때 정말 기쁘면서도 이제 겨우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제가 어떤 글을 쓰고 좋아하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큽니다.”
시 부문 당선자 이서하 씨는 “앞으로는 여성성이 강한 글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시 부문 당선자 이서하 씨는 “앞으로는 여성성이 강한 글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2016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서하 씨(24·본명 이미옥)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선 소감을 묻자 이씨는 “시를 공부하면서도 시인이 된다는 것이 두려워 작품도 적게 쓰고 투고도 잘 하지 않았었던 터라 당선됐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어릴 적부터 시인의 꿈을 꾼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과제로 써냈던 독서록을 유심히 본 선생님의 추천으로 문예반에 가입했다. 문예반에서 소설과 시를 읽은 것이 문학도로서의 첫걸음이었다. 그는 2011년 한양여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문학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쓴 시를 권혁웅 선생님(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께 보여드렸어요. 그때 ‘시와 다른 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죠.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칭찬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계속 시를 썼습니다.”

그는 대학 3학년이 되면서 심한 방황을 겪었다. 누구보다 좋은 시를 쓰고 싶었지만 한 달에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지독한 슬럼프였다. 글에 미쳐 사느라 학업도 내팽개치다시피 했다.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는 학생이 왜 학점을 받느냐는 힐난을 받으며 외톨이가 됐다.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는 책을 읽고 고독에 잠기며 오로지 시만 생각했다. “지금도 시를 쓰는 것은 즐겁다기보다 힘든 일이에요. 그렇지만 그건 제가 글쓰기에 광기(狂氣)를 갖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씨의 당선작 ‘므두셀라’는 개인적 서사와 우주적 상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므두셀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할아버지로, 성서에 나오는 인물 중 최고령인 969년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시 초반에는 화자가 입은 상처와 이로 인한 침잠이 그려진다. 하지만 가라앉는 데 그치지 않고 므두셀라를 호명하며 유한하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2016 한경 청년 신춘문예] "시인되기가 두려웠던 지난날들…창작 고통이 내 안의 광기 깨웠죠"
심사위원들은 “몸이 기억하는 상처를 ‘우주적 명랑함’으로 전환하는 위트와 자기 긍정성에 주목했다”며 “삶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보다 청년다운 문학적 낙천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구체적인 행위에서 시작해 추상으로 이어지는 시적 흐름이 관념으로 완성된다. 이씨는 “대학 때 수강한 ‘문화인접예술’이란 과목에서 철학, 종교, 미술, 언어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웠다”며 “‘므두셀라’를 쓸 때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비롯해 온갖 시어가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고 낮에 글을 쓰는 ‘주독야경(晝讀夜耕)’의 생활을 하고 있다. 밤늦게까지 일하면 피곤할 법도 하지만 책을 읽고 시를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문학을 위해 나를 잠에서 깨우고, 글 쓰는 나를 지켜보는 또 다른 자아 덕분에 계속 시를 쓸 수 있어요. 앞으로는 여성성이 강한 글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시를 쓰고 싶습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