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극단의 시대
‘좌클릭 혁명이냐, 찻잔 속의 태풍이냐.’ 영국 최대 야당인 노동당 대표에 ‘강성 좌파’ 제러미 코빈이 당선되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소리다. 급진 사회주의자 코빈은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치프라스 대표보다 더 심한 ‘왼쪽 정치인’이다. 그는 대학 무상교육, 대기업 국유화, 긴축 반대 등 극단적인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500차례 이상 당론에 배치되는 투표를 하고 예비 내각에도 들어가보지 못한 아웃사이더이기도 하다.

그의 당선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이후 노동당이 걸어온 ‘제3의 길’ 폐기를 뜻한다. 그가 집권하면 영국 전체의 국가 노선이 급좌회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집권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역설적인 전망도 나온다. 이미 예비 내각에 들어 있던 의원 10명이 그와 일할 수 없다며 손을 내젓고 있다.

코빈의 등장은 미국의 샌더스 열풍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의 공약은 아주 비슷하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급진좌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대학등록금 폐지, 연방 최저임금 시간당 15달러 인상 등 무차별 복지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엊그제 나온 경합 주 세 곳의 여론조사에서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을 최고 22%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 열풍이 거세다. 당초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 대선 후보 가운데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의 지지율은 막말과 기행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대중의 ‘극단적인 불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극단의 시대’가 다시 온 걸까.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규정했을 때는 이념 문제가 가장 큰 뇌관이었다. 이데올로기와 냉전의 살얼음판 위에서 대량 살육과 피의 악순환이 일어났다. 그러나 문명이 더 진화한 21세기에 이런 극단 상황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아이러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제사회의 위험도는 높아가고 있다. 영미권 정치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브라질에서도 양극단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끝없는 분쟁으로 날을 지새는 중동, 더 잔혹해지는 이슬람국가(IS), 대량 난민 사태로 몸살을 앓는 유럽 등 난제가 산더미다. 우리의 정치적대립과 사회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냉전과 무기만이 극단을 낳는 건 아니다. 이제는 이념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무엇이든, 어디서든 극단의 쏠림은 위험하다. 균형추가 작동하지 않는 배는 복원력을 잃고 좌초하게 마련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