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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0대에 정년보장, 70까지 정년연장…교수철밥통 깨는 파격시도
[ 김봉구 기자 ] # 40대 중반의 조광현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연공서열을 깬 KAIST 인사개혁의 상징적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석좌교수가 됐다. 최근 3년간 ‘네이처’ ‘사이언스’ ‘셀’ 자매지 등 유명 국제학술지에 논문 34편을 발표한 연구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앞서 30대의 나이로 교수 임용과 동시에 정년보장(테뉴어)을 받아 화제가 됐다.

# 올해 포스코청암상 과학상 수상자인 박배호 교수(물리학부)는 건국대 ‘총장석학교수’다. 역시 40대 중반이지만 특별 임용됐다.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급 논문 150편 이상을 발표하고 논문 인용 횟수도 6000여회에 달하는 탁월한 연구업적 덕분이다. 연공서열을 뛰어넘는 고속승진에 정년보장, 연봉인상까지 파격 혜택이 주어졌다.

교수사회 연공서열이 깨지고 있다. 교수업적평가에서 연구실적을 인정받으면 조기승진이 가능하다. 실력만 있으면 30대에도 테뉴어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연차가 높아도 실적이 없으면 승진이나 재임용에서 탈락한다. 중앙대는 연구실적이 부진한 교수들에 징계를 내리는 강수를 뒀다.

대학들의 성과 위주 평가시스템이 정착되면서 달라진 풍경이다. 연공서열을 깨고 인사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참 교수에게 엄격한 기준만 강요하는 건 아니다. 실력이 뛰어나면 오히려 정년퇴임 후에도 교수직을 보장한다. 가혹한 잣대는 연구·교육 의무는 게을리 한 채 자리보전만 하는 철밥통 교수에게 적용된다.

◆ '젊어진 KAIST' 테뉴어교수 연령 55.5세→41.2세

KAIST 조형물. / 한경 DB
KAIST 조형물. / 한경 DB
KAIST는 서남표 전 총장 시절부터 교수사회 개혁을 주도했다. 성과만으로 교수를 평가한다는 방침 아래 테뉴어 심사를 강화해 이례적으로 교수를 대거 탈락시켰다. 연차가 쌓이면 테뉴어를 받던 관행을 깨고 성과가 없는 교수에게는 과감히 불이익을 줬다. 대신 젊은 나이에도 성과만 확실하면 테뉴어를 주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뜯어고쳤다.

김도경 KAIST 교무처장은 “지난 2007년 테뉴어 대상 자격을 ‘정교수로 7년 이상 근속’에서 ‘신규임용 후 8년 이내’로 바꿨다. 정교수가 아니더라도 조교수·부교수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30대 교수도 테뉴어를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10년 이상 앞당긴 것이다.

그 결과 KAIST는 젊어졌다. 기존에 테뉴어를 받는 교수 평균연령이 55.5세였던 KAIST는 제도 시행 이후 41.2세로 크게 낮아졌다. 김 처장은 “단순히 테뉴어 교수의 나이가 내려간 데 그치지 않는다”며 “도전적이고 연구력을 갖춘 신진 교수가 KAIST로 몰려오는 효과를 거뒀다. 타이트한 테뉴어 제도로 인해 교수들도 좋은 연구 결과를 많이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성과를 내면 30~40대 초반에 테뉴어를 받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거점국립대 중 앞선 교수평가제도를 내놓은 전북대는 임팩트 팩터(영향력 지수)가 높은 논문을 쓴 교수에게 가중치 점수를 부여해 조기승진이 가능토록 했다. 유철중 교무처장은 “30대 초반에 임용돼 계속 우수한 연구실적을 쌓으면 승진연한이 단축돼 40세 전후에 테뉴어를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 오로지 실력… 업적 뛰어난 교수는 '퇴임 뒤 5년 더'

이런 분위기가 고참 교수들에게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서울의 한 주요대학 교수는 “50~60대 교수들 중엔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도 지금처럼 교수업적평가가 강화되기 전에 연차가 쌓여 테뉴어를 받은 교수들이 적지 않다”면서 “고참급인 데다 정년까지 보장돼 연구를 열심히 할 동기 부여가 없다. 논문 한 편 안 쓰면서 철밥통으로 불리는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단 실력이 있다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화여대는 연구업적이 뛰어난 교수는 65세 정년 후에도 70세까지 강의·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성과를 낸 젊은 교수에게 조기승진과 테뉴어, 연구비 지원 등 혜택을 주는 것과 동시에 고참 교수에게도 동기를 부여한다는 취지다.
이화여대 캠퍼스. / 한경 DB
이화여대 캠퍼스. / 한경 DB
서혁 이화여대 교무처장은 “정년을 앞둔 63~64세 때 심사를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교수는 정년 후 초빙석좌교수로 임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3년간 임용 후 중간심사를 거쳐 추가 2년간 더 강단에 설 수 있게 할 계획”이라며 “연차를 불문하고 연구업적과 역량이 훌륭한 교수에게는 능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정년연장이 되는 셈이다. 우수 교수가 퇴임 후 석좌교수 등으로 초빙돼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인재 유출’을 막는 의미가 있다. 연구 연속성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한 지역거점국립대 관계자는 “3~5년짜리 연구과제를 맡은 교수가 도중에 정년을 맞으면 애매해진다”며 “이런 경우 퇴임 후에도 연구교수 등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보완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 노벨상급 획기적 논문 나오려면 '탄력적 운영' 필요

테뉴어 요건이나 승진·재임용 심사 기준 자체를 크게 끌어올리면서 실적 위주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연공서열을 탈피해 평가·인사제도의 신상필벌 원칙이 뚜렷해졌다. 중앙대의 경우 강력한 개혁책을 추진하며 교수 성과급 연봉제까지 도입했다. 박만섭 고려대 교무처장은 “대학이 연공서열 순이란 얘기는 이제 옛말이다. 가장 먼저 보는 게 연구·교육업적”이라고 했다.

대학 내부에서도 확산 단계다. 박배호 교수를 비롯한 2명의 총장석학교수를 보유한 건국대는 연구업적이 뛰어난 교수에게 호봉 추가인정, 승진연수 조정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김성동 건국대 교무처장은 “좀 더 많은 교수들에게 확대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주기적으로 연구력 우수 교수를 선정해 인센티브를 주는 연세대 ‘언더우드특훈교수’도 이런 사례다.

대학들의 양적 평가 기준이 어느정도 정립된 만큼 질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논문 숫자 위주 정량평가를 넘어 논문의 질을 보는 방향으로 평가·인사제도를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한 인문사회계열 교수는 “지금은 과도기다. 국제학술지 게재 수치를 강조하다 보니 교수들이 거기에 맞춰 연구하느라 기초연구, 원천기술연구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학들이 기준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획기적 논문이 나올 수 있다”며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선 좋은 논문 한 편 쓰고 곧바로 테뉴어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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