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위헌 소지" 전문가 의견 외면…공청회(空聽會) 전락
이달 초 국회를 통과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김영란법)’이 위헌 소지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계기로 법 제·개정 등 입법 과정에서 거치는 공청회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 찬반 토론을 통해 법안의 결점을 보완하는 게 본래의 목적이다. 그러나 전문가 의견은 법 제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명분 쌓기용 요식 행위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청회(空聽會)가 된 공청회(公聽會)

김영란법은 각계 이견이 첨예했지만 작년 7월 정무위원회와 지난달 23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각각 한 번만 공청회 과정을 거쳤다.

특히 법사위 공청회는 본회의를 불과 8일 앞두고 급조된 것이어서 법안 통과를 위해 구색 맞추기용 공청회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본회의 통과 직후에도 위헌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지난 4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여야 공동 공청회를 통해 보완대책을 내놓길 바란다”며 공청회를 또 열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법사위가 주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토론자 6명 중 5명은 ‘언론사와 사립학교 포함’ 등 주요 쟁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실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내용은 이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무위와 법사위 두 번의 공청회에 모두 참석했던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변호사)은 “공청회에서 위헌 요소를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반영이 안된 것은 국회의원들이 표와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공청회를 통해 이 법이 얼마나 잘 고쳐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당시 공청회를 주최했던 이상민 법사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은 “공청회에서 모은 지혜의 결과가 담겨져야 하는데 여야 원내대표가 공청회와 무관하게 합의해버렸다”며 “이전에도 쟁점 법안일수록 공청회 결과가 뒤집히는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공청회 결과가 반영됐다면 법 전체를 다시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2월 안에 통과시켜야 한다는 여야 합의에 떠밀려서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청회 열어도 법안 추진 성과 없어

국회에 10년째 계류돼 있는 북한인권법은 공청회 개최에도 불구하고 법안 처리가 지지부진하다. 19대 국회 들어 외교통일위원회에서는 북한인권법에 대한 공청회를 두 번 열었다. 2013년 6월 공청회에서는 제성호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를 비롯해 3명의 교수와 김영순 이사(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가 참석했지만 ‘북한 인권문제 인식의 재정립과 합리적 접근법’을 주제로 토론하는 등 법 제정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일반적 북한 인권 논의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2014년 2월 북한인권법 논의를 위한 소위원회가 열렸으나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다. 외통위 소속 의원실 보좌관은 “이슈를 키우는 측면에서 공청회를 하는 취지는 좋지만 이미 여야 간 쟁점이 명확한 상황에서 별 실효성 없이 진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공청회 기피 현상도 나타나

이러다 보니 공청회를 기피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국회법 58조는 제정법(새로 만드는 법)에 한해 공청회를 반드시 열도록 돼 있지만 위원회 의결로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국회 의원실의 보좌관은 “새로 입법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공청회가 번거롭고 오히려 반대의견이 나오는 것을 우려해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는 제정법과 개정법을 포함해 총 175건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실제로는 5건의 공청회만 열렸다. 산자위 소속인 조경태 새정치연합 의원의 공인경 비서관은 “미국 주의회는 법안 상정 전부터 공청회를 미리 열어 당원,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과정이 당연한 것처럼 돼 있는데 우리는 필요 예산과 인력을 국회에서 지원해주는 데도 공청회를 활용하는 비율이 낮다”고 지적했다.

공청회를 법안 구상 단계부터 성실하게 하고 그 결과가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등 체계적인 공청회 운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