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80%는 서울에 집…혁신도시發 KTX 대란
주말 표 동나 상경 못하기도
공공기관 절반도 안옮겼는데 벌써 '대란'
'기혼직원 절반은 가족동반' 예상 빗나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계획에 따라 151개 기관 임직원 5만여명은 2016년까지 10개 지방혁신도시로 내려가게 된다. 지난해부터 지난달 말까지 68개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이전율은 45%다. 애초 정부는 공공기관을 이전하면 기혼 직원의 절반가량은 가족과 함께 이주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육·생활환경이 열악하고 문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기혼 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20%가 채 안 됐다. 현재까지 이주한 2만여명 중 1만5000명 이상이 주말에 상경함에 따라 KTX 좌석 점유율이 100%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대구 중·남구)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이전을 완료한 40개 공공기관 직원 8000여명을 조사한 결과 가족동반 이주율은 25%였다. 하지만 해당 지역이 고향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수도권에서 가족 전체가 이전한 비율은 훨씬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3월 울산혁신도시로 옮긴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총 451명 중 가족과 함께 이주한 직원은 39명으로 8.6%에 그쳤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429명 중 70명(17%)이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전남 나주로 옮긴 한국농어촌공사는 800명 중 150명 안팎만 가족이 이사했다. 여직원들의 경우 육아문제와 함께 중소형 아파트에 3~5명이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해 서울에서 출퇴근하기도 한다. 울산혁신도시로 이전한 한 공공기관 직원은 광명역과 울산역 주차장에 소형차를 한 대씩 주차해두고 왕복 700㎞ 이상을 KTX로 출퇴근한다. 이 직원은 “울산으로 내려간 뒤 처음 한두 달은 매일 출퇴근했는데 지금은 서울 출장과 회의가 많아 주 2~3회로 줄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올 5월 울산으로 이전한 한 공공기관의 김모 차장은 “왕복 10만원의 비용도 비용이지만, 표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집에 못 갈 때도 있다”며 “지금은 한 달 전에 미리 표를 끊어 놓는 게 습관이 됐다”고 했다. 김 차장이 이용하는 열차편은 금요일 오후 8시52분 울산역발 KTX와 일요일 오후 7시3분 서울역발 KTX다. 두 편 모두 수원을 경유하는 열차라 3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일반 KTX에 비해 요금이 저렴해 2만원(왕복)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이전작업을 진행 중인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벌써부터 서울~부산을 오가는 자체 버스 두 대를 운영하고 있다. 한 직원은 “기차표를 못 구한 직원들이 금요일 저녁에 올라왔다가 일요일 밤에 내려가는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며 “편도만 5시간 이상 걸리는 데다 일반버스라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공기업 방만경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우등고속버스는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택금융공사는 앞으로 부산국제금융센터 입주사들과 협의해 공동버스 운행을 늘릴 계획이다.
2005년 KTX 개통 이후 줄곧 주말 좌석난을 겪고 있는 경부선뿐만 아니라 호남선도 최근 한국농어촌공사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이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표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직원이 800여명인 농어촌공사는 금요일 저녁 서울로 올라가는 직원들을 위해 버스 세 대를 운행하고 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KTX가 고속버스에 비해 비싸고 시간도 2시간40분이나 걸리지만 하루 이틀 전에 예매하지 않으면 표가 아예 없다”며 “한국전력 등의 본사 이전이 마무리되면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레일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열차와 선로가 부족해 좌석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KTX 경부선의 평균 좌석 점유율(좌석 대비 승객 수)은 105%였지만, 금요일 오후(18~24시)와 토요일 오전(05~12시) 상행선은 각각 108.3%와 132.8%였다. 호남선도 토요일 오전에는 111.8%를 기록, 지난해에 비해 26.2%포인트나 늘었다. 일요일 오후(13~24시) 하행선도 경부선은 142.1%, 호남선은 107.7%로 작년보다 크게 높아졌다. 예매를 해뒀다가 출발 직전 현장에서 취소하는 표를 감안하면 주말에는 사실상 당일 승차권 구입이 힘들다는 얘기다.
백승현/조진형/박한신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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