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 붙은 전셋값 >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잠실지역 한 부동산 중개업소 벽면에 전세 및 월세 가격표가 붙어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불 붙은 전셋값 >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잠실지역 한 부동산 중개업소 벽면에 전세 및 월세 가격표가 붙어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서울 불광동 ‘북한산힐스테이트 1차’ 전용 84㎡에 전세로 살던 직장인 박진영 씨는 최근 전용 59㎡를 3억6000만원에 구입했다. 박씨가 은행 대출을 끼고 평형을 줄여서라도 집을 장만하기로 결정한 건 크게 오른 전셋값 때문이었다. 박씨는 “집주인이 전용 84㎡ 전세를 재계약하려면 종전보다 1억원 높은 3억5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며 “집 구입 때 빌린 은행 차입금 이자는 소비를 줄여 충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수도권 전세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저금리 속에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전세 매물이 줄어들고 있는 게 전셋값 상승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전세 수요의 매매 전환이 예상보다 느려 전셋값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오름폭 커지는 수도권 전셋값

[다시 치솟는 전셋값] 씨마른 전세…석달 새 강남 5000만원·강북 2000만원 '껑충'
전셋값 초강세가 서울·수도권 지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대치동 반포동 잠실동 등 강남 지역에선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가세했다. 김정원 신대치공인 사장은 “은마아파트는 학군 수요가 줄어드는 가을이 비수기인데 올해는 인근 국제아파트 재건축 이주 등의 영향으로 하반기 전셋값이 5000만원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잠실 파크리오와 리센츠 전용 84㎡ 전세 시세는 6억~6억8000만원 선이지만 물건을 찾기 힘들다는 게 중개업소 설명이다.

서울 강북과 수도권 신도시도 양상은 비슷하다. 학원이 몰려있는 중계동 일대 아파트의 경우 이달 들어 전용 59㎡ 전세가격은 1000만원, 84㎡는 2000만원 뛰었다. 중계동 써브공인 관계자는 “전세 물건이 하나 거래된 뒤 다음 물건은 또 몇백만원 올라서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산동 월드타운대림 전용 59㎡는 두 달 전 2억6000만원에서 최근 2억9000만원으로 뛰었지만 물건 구하기가 쉽지 않다. 성산동 황금공인 관계자는 “올 들어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 매매 가격을 육박하고 있다”며 “매매 가격이 올라가면 다시 전세 가격도 조금씩 오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신혼부부 등의 수요가 많은 분당 일산 등에선 저금리 여파로 집주인들이 반전세(보증부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셋값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분당 야탑동 장미동부, 일산 마두동 백마5단지 쌍용 등이 최근 2주 새 500만~1000만원 뛰었다.

○반전세 전환… 전세물건 부족

최근 전세 가격 상승은 가을 이사철을 맞아 신혼부부 등의 수요가 늘어난 상황에서 전세를 반전세로 돌리는 사례가 많아진 게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전세계약이 만료된 아파트의 경우 보증금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강하다는 게 서울·수도권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춘우 신한금융투자 부장은 “집주인이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 발표 이후 집값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해 매물을 회수하는 동시에 가격을 높이면서 전세의 매매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4년간 서울·수도권 아파트 공급도 줄어들어 입주 물량이 적정 수요(3만가구)에 못 미치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세금 상승 속도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은 64.4%로 지난해 말(61.5%)보다 2.9%포인트 올라 매매 가격과의 격차가 크게 줄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매매 거래가 늘고 전세가율이 많이 높아져 전세 가격 오름세가 둔화될 것”이라면서도 “강남권 재건축 이주 수요와 세입자의 새 아파트와 역세권 단지 선호 등으로 국지적인 상승세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진수/이현일/이현진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