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고곤의 선물’.
내달 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고곤의 선물’.
위대한 음악가가 평생의 심득(心得)을 담아 작곡한 작품의 명연주를 듣는 듯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고곤의 선물’은 ‘현존하는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피터 셰퍼(88)의 역작을 생동감 있고 입체적으로 형상화한다. 가슴에 묵직하게 다가와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감동의 무대다.

‘고곤의 선물’은 ‘에쿠우스’ ‘아마데우스’로 잘 알려진 셰퍼가 66세인 1992년 완성해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 소극장에서 초연했다. 그의 ‘작품 연보’ 마지막에 나오는 작품이다. 셰퍼는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고령의 나이도 있지만 아마도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원 없이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신화와 역사, 종교, 철학 등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폭넓은 인문학적 세계와 통찰을 작품에 담아낸다. 셰퍼의 극적 분신이라 할 만한 극 중 주인공인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의 거칠고 정열적이고 극단적인 삶을 통해서다.

연극의 본질과 의미, 역할을 열정적으로 설파하고 인간 본성의 양면을 보여주는 ‘복수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극은 치밀하게 구성된 ‘잘 짜인 대본(well-made play)’의 정점을 보는 듯하다. 주제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 46세로 사망한 에드워드의 삶을 부인 헬렌이 ‘숨겨진 아들’ 필립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치열한 갈등 구조와 극적 전개로 긴장감을 유발하고 이어가다 마지막에 굉장한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명연’의 중심에는 2012년에 이어 헬렌 역을 맡은 김소희가 있다. 헬렌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과거의 에드워드와 현재의 필립을 오가며 서로 다른 감정과 화술을 보여줘야 한다. 셰퍼가 이 작품에서 새롭게 보여준 극작 기법을 구현할 핵심 인물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기교를 요구하는 헬렌을 김소희는 뛰어난 화술과 다채로운 감정 변화로 완벽하게 표현한다. 대사 전달력과 존재감만큼은 ‘당대 최고’라는 찬사를 들을 만하다.

극단 실험극장이 2008년과 2009년, 2012년에 이어 네 번째로 제작했다. 올해 창단 54주년을 맞은 ‘전통’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무대다. 내달 5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