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돌연 대
[다산 칼럼] 참혹한 사고, 예방은 할 수 없었을까
한민국 국가 자체의 피로증상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겉보기엔 멀쩡한 금속도 피로증상을 겪는다. 금속 표면을 확대해 보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금이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멀쩡하다가도 항복점(yield stress limit)을 넘는 순간 극적인 파손으로 이어진다. 1954년 영국 코멧(Comet) 항공기 추락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금속피로(metal fatigue) 증상이다.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침몰했다고 한다. 국가와 정부 전체를 다 뜯어고쳐야 한다는 국가개조론, 정부 리셋론이 나오고 여론이 들끓는다. 대한민국 국가와 정부는 66년 먹은 꽤 오래된 기구다. 역사가 훨씬 더 깊은 나라도 수두룩하지만, 우리 시스템도 퍽 낡은 셈이다. 1987년 이래 5년마다 정부가 교체되면서 제2 건국이니 정부 새판 짜기니 하며 푸닥거리를 벌였지만 이제 피로증상을 보인다. 하물며 원전이나 정유공장, 저유시설, 교량과 철도, 도로, 지하철 등 수십 년 넘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피로증상이 대형사고로 이어질까 두렵다.

문제는 그런 피로증상을 하필이면 이토록 참혹한 사고와 희생을 겪고서야 인지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 곳곳을 미리미리 정밀한 확대경으로 면밀히 들여다보고 항복점에 근접했는지 여부를 간파하여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었을까. 안타깝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정반대다. 오히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다. 환경정책이나 교통안전대책은 재난과 사고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도 겉보기엔 멀쩡했었다. 이번 사고가 아니었다면 또 몇 번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죽음의 항해를 계속했을지도 모른다. 참담할 뿐이다.

세월호를 인양하면 이를 눈물의 벽으로 삼아 함께 가슴을 쥐어뜯으며 애도하고 늘 다시 돌아와 반성하고 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다짐하는 성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곳에 우리 모두가,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공직자들과 안전 분야 종사자들이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비명을 새겨 넣어야 한다.

아직도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헤매고 있는 고혼들을 온전히 구해내지도 못했지만, 이제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며 앞일을 챙겨야 한다. 희생자 수습과 유가족 보호, 침몰 사고와 구조 실패에 대한 원인 규명과 책임추궁, 대통령과 정부의 사과와 대책 마련 등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과 정부의 피로증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책 마련의 절실함이 사그라질까 걱정이 앞선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한 자신의 약속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부 신뢰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국민 모두가 걱정인형이 된 것처럼 우려하고 또 우려한다.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단 사고가 터지면 그로 인한 희생과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허둥대다 챙기지 못한 대통령과 정부의 일, 기회비용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러니 미리미리 부정한 힘이 누적되지 않도록, 그 쌓인 적폐의 균열이 점점 커지지 않도록 늘 스스로와 정부를 살피고 살펴서 모르는 사이 항복점을 넘는 파국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안전관리비용 몇 십억원이 수십 조원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박근혜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여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이는 희생자와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물론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이상 정부 여당에 불리한 요인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여야 모두가 어렵더라도 자숙 자제하고 오로지 국민과 대한민국의 안전만을 생각하면서 금도를 지켜야 한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