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21일 서울 우면동 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KT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황창규 KT 회장이 21일 서울 우면동 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KT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상장사 662개사가 일제히 정기 주주총회를 연 21일, 일부 대기업 총수들이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대다수 주총이 큰 잡음 없이 치러졌지만, 피씨디렉트 한국토지신탁 등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기업 주총에선 치열한 표대결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의 일으킨 기업, 뒤숭숭한 주총

이날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KT 주총은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 등의 여파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황창규 회장은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밝히고, 경영 정상화에 매진하겠다고 주주들에게 약속했다.

일부 주주들이 고성, 몸싸움, 피켓시위를 벌이는 등 주총장은 어수선했지만 상정된 4개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주주들은 “경영진이 적자 위기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거나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에서 탈피해 경영에 신경써 달라”는 의견을 앞다퉈 내놨다.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11명의 이사 보수한도는 전년도 65억원에서 59억원으로 낮아졌다.

주요 대기업 주총에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부 총수들이 잇따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했다. 탈세·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CJ E&M, CJ CGV, CJ오쇼핑 등 임기가 만료된 계열사 3곳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은 임기가 남아있는 CJ(주),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GLS, CJ시스템즈 등 4개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은 계속 맡는다. 배임 등 혐의로 1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다 올 2월 석방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주총 직전 모든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하이트진로홀딩스의 박문덕 회장도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경영권 놓고 치열한 표대결

경영권 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기업들 주총에선 표대결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스틸투자자문의 공격적 인수합병(M&A) 위협을 받았던 피씨디렉트는 이날 주총에서 서대석 대표이사 등 기존 경영진이 표대결 끝에 경영권을 방어했다.

스틸투자자문은 지난해 주가조작, 공시위반 등이 적발되면서 보유한 271만433주(39.24%) 중 170만주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 탓에 표대결에서 밀렸다. 직원과 일부 주주들이 ‘주가조작 투기꾼은 물러가라’, ‘우리 회사는 우리가 지킨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여 한때 긴장된 분위기도 연출됐다.

이사 선임을 두고 표대결이 벌어진 한국토지신탁 주총에선 지난해 말 최대주주에 오른 엠케이인베스트먼트(지분율 37.56%)가 추천한 사내이사가 선임됐다. 최대주주인 엠케이 측 최윤성 엠케이전자 대표이사가 사내이사로, 2대 주주이자 경영권을 갖고 있는 아이스텀앤트러스트(31.88%) 측 전석진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집중투표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주총에선 양측 간 기싸움이 첨예했다. 엠케이 측을 지지하는 주주가 서류 미비 탓에 주총장에 들어서지 못하면서 고성과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한토신의 현 이사회 구성원 7명 중 5명은 아이스텀 측 인사로 이뤄져 있다.

경남 김해 본사에서 열린 대창단조 주총에선 10여명의 소액주주와 스위스계 헤지펀드 NZ알파인 측이 제안한 계열사 인수합병 추진과 액면분할 등의 요구가 부결됐다.

윤정현/황정수/강진규/김보영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