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 유도그룹 회장이 18일 서울 가산동 본사에서 이글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열 기자
유영희 유도그룹 회장이 18일 서울 가산동 본사에서 이글패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기열 기자
“골프는 나 자신을 다스리는 운동입니다. 세상 일이 제 마음대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선생님이죠.”

구력 30년의 유영희 유도그룹 회장(66)은 골프를 통해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겸손해진다고 했다. “골프가 유일한 취미이자 건강 유지법”이라고 말하는 유 회장을 18일 서울 가산동 유도그룹 본사에서 만나 그의 인생과 골프 이야기를 들어봤다.

“골프를 치다보면 인생이 욕심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드라이버로 공을 가장 멀리 보내놓고 욕심을 부리면 두 번째 샷에서 토핑을 내곤 하죠. 순간적으로 절망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게 제 실력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골프는 즐거워져요. 프로와 치더라도 한두 홀에선 이길 수도 있는 게 골프예요. 한계를 깨닫고 저를 용서하면서 칩니다.”

유 회장은 1980년 플라스틱 사출금형에 들어가는 장비인 ‘핫러너 시스템’을 생산하는 (주)유도를 설립했다. 33년 동안 한우물만 판 그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포르투갈, 브라질 등 세계 각지에 18개 생산공장을 세우며 세계화 전략을 폈다. 그 결과 유도그룹은 지난해 매출 6억달러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7억5000만달러 규모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프를 시작한 때는 사업에 뛰어든 지 3년이 지난 1983년이다. 유 회장은 “고객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았는데 당시엔 코치도 거의 없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며 “처음엔 잘 못치니 자존심이 상해 벤 호건의 책을 숙독하며 독학했다”고 회상했다. 한때 ‘공포의 장타’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6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지금도 드라이버로 230야드를 날린다. 핸디캡은 13.

이글을 20여번 했다는 유 회장은 15년 전 경기 용인시 골드CC에서 기록한 이글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는 “파5홀에서 드라이버샷을 잘 쳤는데 공이 벙커에 들어갔다”며 “세컨드샷으로 벙커에서 볼을 빼낸 뒤 180m 남긴 거리에서 5번 우드로 쳤는데 공이 그린 끝에 맞더니 20m를 굴러 홀로 들어가더라”고 회상했다. 유 회장은 “공이 직접 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힐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며 “벙커에 공이 빠져 위기를 맞았지만 이글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게 골프의 묘미”라고 웃었다.

지금은 경영자의 길을 걷는 유 회장은 원래 가톨릭 성직자의 길을 걸었던 독특한 이력이 있다. 광주가톨릭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교에서 나와야 했다.

“성직자 길을 가려다가 인생의 OB(아웃 오브 바운즈)를 낸 셈이죠. 소신학교를 들어간 중학교 때부터 14년 동안 신부가 되려고 했는데 직선적인 성격 탓에 성직자에 부적합하다는 말을 듣고 학교를 나와야 했습니다. 처음엔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잘된 것 같아요. 하느님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비즈니스라고 생각해 세상으로 내보내셨다고 믿었죠. 일찍부터 사업가를 꿈꿨고 33년간 한우물을 파 이 분야에서는 세계 1위까지 올라왔습니다.”

경영과 골프 가운데 무엇이 더 쉬우냐는 질문에 “경영이 골프보다 훨씬 쉽다”는 답이 돌아왔다.

“골프는 한순간의 실수가 바로 결과로 이어집니다. 드라이버를 한번 잘못치면 OB가 나서 스코어 손해를 보게 되죠. 경영은 순간의 잘못이 바로 실패로 돌아오진 않아요. 골프보다 훨씬 여유있는 게임이 경영입니다. 실수를 했더라도 수정할 수 있죠. 방향을 멀리 보고, 제대로 정하고, 사원들과 교감하면서 사업을 진행했더니 이 자리까지 왔네요.”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