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규제와 경직성, 한국을 가로막는 족쇄
홍콩에 와 있다. 11월은 홍콩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시절이다. 그제, 어제는 슈퍼 태풍이라는 하이옌 영향으로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멀리서 소멸하는 태풍임에도 그 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가을은 깊어가고 겨울이 올 것이다. 홍콩 여인들도 모피를 입는다고 하면 놀라겠지만 영상에도 얼어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겨울은 겨울인 것이다. 시절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무들은 잎갈이에 한창이고 꽃들은 더욱 화려해지고 있다.

요즘 대학 평가에서 늘 아시아권 상위를 차지하는 홍콩과학기술대를 방문하기 위해 와 있는데 느끼는 것이 많다. 서울의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 대학에 와서 느끼는 한가로움의 뒤편에서 하게 되는 우리 대학들과의 비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가장 부러운 것은 유연성이다. 학교의 발전, 교육과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거의 모든 것을 자유로이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조직의 안정성과 지속성은 유지한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발전을 위해 필요한 유연성은 거의 전무하고 그에 더해 어떤 변화 속에서도 대학이 유지해야 할 안정성과 지속성은 학칙과 규칙을 수시로 개정해 흔들어댄다. 선출직 총장이 일반화되면서 이런 반교육적, 반학문적, 반개혁적인 일명 개혁들이 일상화됐다. 총장 선출제도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왜 좋은 제도에서 선출된 많은 총장들이 좋은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하고 임기가 끝나고 나면 처음으로 복귀하는 일들을 되풀이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개혁은 그 대상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확보할 때 성공한다는 너무나 쉬운 원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을 위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리더십은 당위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한 리더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당위성이 확보될 때 대중의 협력이 따르는 것이다. 대학이나 국가나 대중이 협력하지 않는 개혁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학 루카스가 한국 경제의 성공을 기적이라고 부르면서 강조한 것도 다수의 국민이 교육과 나라의 발전에 보인 헌신이었다. 모든 개혁과 혁신의 성공 뒤에는 대중의 헌신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변화와 혁신의 시대에 우리의 리더십이 지나치게 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만 통하는 논리와 정서의 이름으로 분파주의적 리더십이 서슴없이 행사되고 있다. 분파주의적 리더십으로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변화와 혁신뿐만 아니라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안정성과 지속성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탕이 흔들리는 마당에 변화와 개혁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처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재벌 회장의 유명한 말이 있지만 변화와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처자식까지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만은 않다. 그 핵심에 규제와 경직성이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경직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개혁할 때다. 방향은 두 가지일 것이다. 풀어야 할 경직성은 과감하게 폐지·완화하고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는 가일층 강화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의 정치로 그것이 가능할까라고 자문할 수밖에 없다. 국회를 보라. 특히 입법 활동을 거부하고 있는 야당의 행태는 미국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정부 폐쇄의 한 형태인 것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은 가벼운 사안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경제가 침몰하고 국제관계가 요동치는 현실 앞에서 대통령의 사과 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 때문에 모든 본연의 임무를 포기한다? 결국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잘난 지도자들이 거대 담론에 둘러싸여 긴급한 법안마저 내동댕이친 사이 대한민국호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표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여, 정녕 이를 바라는가?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