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독일도 한국도 죄가 없다
미국 재무부가 최근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경상수지 흑자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통제 경제인 중국과 엔저의 일본은 그렇다고 쳐도 모범국가인 독일과 한국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마침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시점이다. 미국이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미 재무부의 독일 비판은 한마디로 독일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가 유로존의 경제 회복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 위기에도 독일은 수출을 계속 늘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올 상반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의 7% 수준이나 된다는 통계치도 제시했다.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부총재는 독일을 향해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라고 압박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독일은 세계에 부담이다’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독일의 수출 확대는 ‘근린 궁핍화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수출품의 공급사슬은 안 보나

그러나 이런 비판들은 너무 단선적이다. 수출국과 수입국으로 양분해 수출국의 흑자는 수입국의 적자와 같아 ‘제로섬’이 된다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한 나라가 수출하는 최종재에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수입하는 원자재와 중간재가 들어간다. 수출품의 공급사슬(supply chain)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국제산업연관표(2009년 기준)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독일은 최종재 수출에 의한 자국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67%에 이른다. 주요 40개 국가 중 11위로 일본(86.1%·1위) 미국(83.2%·2위) 중국(72.9%·7위)보다 훨씬 낮다. 독일 수출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33%는 독일에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출하는 다른 나라들의 몫이다. 독일 재무부가 “독일의 최종재 수출이 증가하면 독일 기업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국가들의 수출도 늘어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독일보다 훨씬 더 세계 경제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최종재 수출을 통한 자국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58.7%(24위)로, 독일보다 많은 41% 이상의 부가가치를 중간재 공급 국가들에 넘겨준다. 글로벌 생산체제 확산, 국제적 분업의 고도화로 글로벌 공급사슬이 확대된 데 따른 결과다.

그래도 비는 피하고 볼 일

한 나라의 수출은 이제 다른 나라까지 먹여 살린다. 독일도 한국도 비판이 아니라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소위 무역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려면 총량을 기록하는 현행 무역통계의 문제점부터 지적해야 옳다. 기본적으로 무역수지, 경상수지는 경쟁력의 결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사설에서 미 재무부를 향해 독일의 성공을 꾸짖지 말라고 질책하는 이유다. 사실 무역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는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불순한 의도도 엿보인다. 경제자유화의 퇴조, 세계 이성의 상실이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양적완화 출구 이후 환율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마당이다.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듯한 최근의 기류는 그래서 영 꺼림칙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수출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들의 해외투자 확대를 독려하는 비상대책이라도 강구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비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