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맏형’ 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차기 사령탑을 정할 정기총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전경련은 내달 21일 정기총회를 열어 차기 회장을 선임한다. 현재로선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사진)의 연임과 새 회장 선출 가능성이 반반이란 게 재계의 관전평이다.

○허창수 회장 연임할까

전경련은 늦어도 내달 14일(정기총회 1주일 전)까지 차기 회장을 잠정 결정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허 회장의 연임을 점치는 쪽이 많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경련 내부에서도 “허 회장 이외엔 대타가 없다”는 기류가 흐른다.

정작 허 회장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선 “내 임기는 끝났는데…”라고 했다.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1주일 뒤인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선 “(연임 여부는) 내가 결정할 게 아니다”고 말해 온갖 추측을 낳았다. 재계 일각에선 허 회장이 연임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허 회장이 평소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다 ‘중소기업 정부’를 표방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연임 결정을 내리기엔 (허 회장의) 부담이 클 것이란 점에서다.

○연임하지 않을 경우 대안은

허 회장이 연임하지 않는다면 차기 회장 선출은 난항이 예상된다. 전경련은 “회장단에서 누구를 추대하겠다는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쉽게 풀릴 문제”라고 하지만 대안은 별로 없다. 당장 4대 그룹 총수들은 나서지 않을 전망이다. 최태원 SK(주) 회장은 작년 말 그룹을 대표하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서 물러났고, 구본무 LG 회장은 1998년 이른바 ‘빅딜’ 사건 이후 전경련 행사에 발길을 끊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만 건강 등의 이유로 어렵다는 게 두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하실 일도 많은데 전경련까지 챙길 여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4대 그룹을 제외한 10대 그룹에서도 후보군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경우 ‘10대 그룹에서 나서지 않으면 최고 연장자가 회장을 맡는다’는 전경련의 오랜 관행이 기준이 될 수 있다. 고(故) 김각중 경방 명예회장(2000~2003년), 강신호 동아제약 명예회장(2004~2007년) 등이 그런 케이스다. 이에 따르면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75)과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71)이 1순위 후보군이다. 그러나 재계 순위 20위권 밖인 기업 총수가 맡기엔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크지 않다.

50·60대 젊은 회장의 등장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57),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58), 박용만 두산 회장(58) 등으로 ‘깜짝 세대교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10년째 잡음… 올해도 재연될까

어떤 시나리오를 따르든 쉽지 않은 선출 과정이 될 것이란 게 재계의 공통된 관측이다. 과거와 달리 위상이 추락한 전경련 회장을 누구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전경련 회장 자리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03년엔 손길승 SK 회장이 대선자금 검찰 수사 탓에 임기를 1년4개월 앞두고 그만뒀다. 뒤이어 취임한 강신호 회장(동아제약 명예회장)은 2007년 2월 정기총회에서 3연임을 시도하다 일부 부회장들의 반대로 물러났다. 당시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은 총회 공개석상에서 조 회장을 겨냥해 “70세가 넘으면 전경련 회장은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2010년에는 조석래 회장이 건강악화로 갑자기 사의를 표명하면서 8개월간 회장 자리가 공백인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A그룹 관계자는 “쟁쟁한 기업인들이 거쳤던 전경련 회장 자리를 지금은 누구도 맡지 않으려 한다”며 “4대 그룹 총수가 맡지 않는 이상 회장 선출을 둘러싼 ‘폭탄 돌리기’와 같은 양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태명/윤정현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