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원장 정진엽)이 최근 국내 의료계에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정보기술(IT) 이노베이션’ 대통령상을 수상해 화제다. 일반기업이 아닌 의료기관이 국내 최고 권위의 IT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T 이노베이션 대상은 올 한 해 산업과 공공분야에서 국가 IT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한 기업이나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진료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IT 기술을 접목시켜 환자에게 신속함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03년 개원 때부터 세계 최초로 차트와 필름, 종이문서 등을 모두 전산화한 시스템을 구축, 국내 병원들이 가장 닮고 싶은 병원으로 우뚝 섰다. 19일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해 대한민국 의료계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명품 IT 진료시스템’을 살펴봤다.

○국내 의료계의 ‘IT 성지’로 우뚝 서다

경기도 성남의 분당서울대병원에 들어서면 우선 모든 병동에 설치된 55인치 초대형 터치 스크린을 볼 수 있다. 의료진이 회진할 때마다 터치 스크린에 환자의 모든 기록과 영상을 띄워 놓고 손으로 당겼다 폈다 하면서 환자 상태를 일시에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첨단시스템이다. 의사별로 자기가 맡고 있는 환자의 당일 혈압, 체온, 약 투여 현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또 입원(또는 진료 개시일)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환자 상태 변화도 한눈에 체크가 가능하다. 합병증이 있는 환자의 경우 다른 과와의 협진 내용도 수시로 점검해 곧바로 진료에 적용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런 방식으로 환자 가족들에게 경과보고 프레젠테이션도 이뤄진다.

이기혁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 교수는 “IT 병원 하면 의사들이 환자 얼굴은 안 보고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는 줄 아는데, IT 기술을 발전시키면 진료 효율성을 높여 환자들과 더 효율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앞서가는 의료시스템은 이뿐만 아니다.

병원 내에서는 환자 차트가 없다. 인쇄된 처방전이나 검사지도 없고, 엑스레이 등 의료영상 필름도 없다. 모든 게 전자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의료진은 병원 밖에서도 스마트폰으로 환자 진료 정보와 CT(컴퓨터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의사들은 해외 학회에 가서도 환자 상태를 즉시 점검하고 즉각적 처치를 내릴 수 있다. 오죽하면 의사들 사이에서는 “병원에서 퇴근해도 환자 상태를 24시간 파악하게 됐다. 이제 쉬는 시간이 없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때도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만큼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적정한 타이밍에 맞춰 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화돼 있다는 얘기다.

수술받을 환자들은 수술 과정 그림과 사진이 담긴 아이패드 화면을 보면서 상세한 설명을 듣고, 수술 동의서에 전자 서명을 한다. 수술 후에는 병실에 누운 채 수술 경과를 알 수 있는 사진을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IT로 시작해 IT로 끝난다. 그야말로 미래 병원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연해놓은 셈이다.

○美 ‘세계 최고 IT병원’ 극찬

국내 최고의 IT 융합 ‘디지털 병원’인 분당서울대병원을 이끄는 수장은 정진엽 원장(55)이다. 정 원장은 “높은 수준의 한국 의료기술과 IT 강국의 장점을 접목한 미래형 병원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의료정보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매년 수십여 나라에서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찾아와 병원을 둘러보고 IT시스템을 견학하는데 자기 나라 병원에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2008년 임기 2년의 원장직을 맡은 이후 올해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역대 서울대 산하 병원장 중 최초다.

정 원장은 “지금은 전 세계에서 환자들이 실력있는 병원을 찾아다니는 시대”라면서 “분당서울대병원의 높은 의료 수준과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사례가 좋은 평가로 돌아온 것 같다. 환자와 더욱 소통하고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의료 선진화를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소아정형외과가 전공으로, 지금까지 뇌성마비 환자의 보행 교정을 위한 하지 수술을 5000여건 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의료IT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꾸준히 인정받고 있다. 이 병원의 EMR(전자의무기록),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 병원 MIS(경영정보시스템) 등은 카자흐스탄 등 해외 의료시장에 진출할 때 함께 구축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일본 도쿄의대를 비롯해 중국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각국의 국립병원들과 의료기술교수 MOU(양해각서)를 맺는 등 국내 선진의료기술 구축사례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앞서 2010년 미국보건의료정보관리 및 시스템학회 애널리틱스에서 부여하는 의료정보화 단계 중 국내 병원으로는 유일하게 최고 수준인 7단계 레벨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른바 ‘세계 최고 IT병원’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내년 완공 암병원 “IT융합의 메카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글로벌 IT업체와 협업, IT의료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분당서울대병원 처럼 전사적인 차원에서 병원 전체에 적용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모바일 EMR시스템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을 활용, 병원 내·외부에서 동일한 진료환경으로 환자의 진료 정보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점이 놀랍다. 외부에서 모바일 EMR을 활용, 병원 내부로 연결되는 사례는 월평균 18만여건이나 된다. 의료진의 반응도 좋다.

안상훈 외과 교수는 “병원 외부에 있을 때 병동 환자나 응급실 환자의 응급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했고, 김세중 신장내과 교수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입원환자 상태 및 다른 과에서 의뢰한 환자를 점검할 때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입원환자에 대한 진료 관리에도 IT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입원 환자들은 고유의 바코드가 담긴 전자 태그를 손목에 차는데, 투약이나 주사·검사 등을 할 때마다 의료진의 처방 바코드와 환자의 것이 일치하는지 전자장비로 체크된다. 불일치 시 자동으로 경고문이 뜬다. 이 교수는 “IT 기술이 의료 과오나 약화(藥禍) 사고를 예방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내년 3월에 개원할 암(癌)·뇌신경병원의 최첨단 IT 시스템이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의료-IT 융합 상품 수출에 나설 것”이라며 “의료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