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합의체서 첫 판례…과세 관행에 큰 영향 미칠 듯
"납세자에게 `법전 찾아보라'는 행정편의 용인 못해"

납세고지서에 가산세의 종류와 산출근거를 기재하지 않은 세금 부과처분은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8일 박모(37)씨 등 3명이 서울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그동안 과세당국이 가산세의 산출근거 등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합계액만 고지서에 기재하는 관행이 유지돼왔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향후 과세 관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하고 대법원장이 주재하는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상고심 사건을 심리ㆍ판결하는 기구다.

재판부는 "가산세는 종류가 다양하고 산출근거가 제각각이어서 내용을 알기 어렵다.

따라서 가산세를 부과할 때는 조세원리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세액ㆍ산출근거 등을 명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본세가 아닌 가산세라고 해서 적법절차 원칙의 법 정신을 완화해 적용할 근거는 없다"며 "가산세도 본세와 마찬가지로 형식과 내용을 갖춰 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세처분의 상대방인 납세의무자에게 무슨 가산세가 어떻게 부과된 것인지 법전을 찾아보라는 식의 행정편의적 발상은 법치의 광장에서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만 본세와 가산세가 모두 부과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원고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세관청이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가산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납세의무자는 내용을 잘 알고 불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의가 있는 대법원의 첫 판례"라고 말했다.

형제자매인 원고들은 2005년 4월 모친으로부터 대구 달서구 땅을 물려받고 세금을 납부했으나 토지가 아니라 그 위에 선 건물을 증여받은 것이라며 2005년 10월 기존 증여계약을 합의 해제했다.

이들은 과세당국이 2006년 5월 다른 부동산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면서 달서구 땅의 가액을 합산한 가산세를 부과하자 불복해 소송을 냈다.

1심은 합의 해제에 의한 증여재산 반환이 증여일로부터 3개월(증여세 신고기한) 이후 이뤄진 경우 이미 성립한 증여세 납세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고지절차상 하자도 없었다며 청구를 기각했고 2심도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