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한 진료행위, 사망과 인과관계 없어도 책임"

당직의사나 주치의가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환자를 방치했다면 사망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병원 측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9부(이진만 부장판사)는 A씨 유족이 B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에게 1천500만원을 배상하라"며 1심을 깨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유족은 2008년 11월 B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A씨가 폐출혈로 숨지자 "감염 예방에 소홀했고 치료도 늦었다"며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1억5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의료진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자 유족은 "A씨가 숨진 날 밤 약 5시간 동안 당직의사·주치의가 간호사의 연락을 받지 않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더해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의료진의 감염 예방 조치나 치료 자체에 과실은 없다고 봤다.

또 당직의사나 주치의가 5시간 동안 A씨를 진료하지 않은 것이 사망의 원인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병원의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면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만약 현저히 불성실하게 진료했다면 그것 자체로 불법행위가 성립돼 환자나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병원이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5시간 가까이 당직의사·주치의가 간호사의 호출에 응하지 않은 것은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불성실한 진료 행위로 의사들의 사용자인 병원이 환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hapy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