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인텔리전스’의 가장 큰 목적은 시장과 고객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 분석해 시장 가시성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제대로 된 마켓 인텔리전스를 위한 요소로는 적시 정보 공급, 단기 매출성과 지원, 상시 업무화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은 완결성 있는 계량 자료, 즉 일관되게 ‘앞뒤가 맞는’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반도체용 가공소재 업체에서 생산시설 확대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앞서 설비 가동률, 관련 시장 규모 및 점유율 변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한 분기 사이 시장점유율이 매우 큰 규모로 높아지거나 하락한 구간이 여러 차례 확인됐다면, 시장이 매우 경쟁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산시설 확대를 결정하기 전에 시장 상황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알아보고, 보다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과연 이 같은 접근은 올바른 것일까.


#경영판단 위해 정보 일관성 있어야

현실에서는 판단 근거가 된 시장점유율 데이터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시장점유율을 산출하면서 매년 2분기 말에는 미국 시장조사기관 공시 정보를, 4분기 말에는 영국 시장조사기관 공시 정보를 적용하고, 1분기와 3분기는 마땅한 공시자료가 없어 인터넷 뉴스에서 수집한 정보를 사용하는 식이 많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데이터가 매출 인식 기준, 환율 적용 방법이 다르고 정보를 내놓는 기관마다 시장의 범위에 대한 정의가 다른 탓에 마치 시장점유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처럼 부정확한 정보를 기준으로 생산시설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투자를 결정하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절대적 가치보다는 상대적 가치가, 매출 총액이 얼마인지보다는 경쟁사와의 차액이 얼마인지가 중요해진다. 가능한 여러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각 대안 간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앞서 가정한 예와 같이 앞뒤가 맞지 않는 계량자료는 정확한 비교를 불가능하게 해 오히려 올바른 의사결정을 그르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일관성 없는 정보는 단지 미흡한 정보에 그치지 않고, 경영상의 중대한 오류를 유도하는 독(毒)이 돼버릴 수 있다.

기업으로서 언제나 원하는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들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정보를 다룰 때는 다소 정확하지 않더라도 모든 값이 동일한 기준에서 측정, 분석돼 항목 간 비교 가능성이 있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산업자본재 시장에서 완결성 있는 계량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행동이나 전략 방향 등 추상적 개념보다는 상품 분류나 지리적 위치와 같은 물리적 기준에 따라 시장을 정의하고 분류할 필요가 있다.

소비재 산업이나 B2B(기업 대 기업) 영역에서도 반도체와 같이 투자가 집중되는 대단위 산업이 아니라면 전체 시장 정보를 일관성 있게 제공하는 조사기관을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여러 기관에서 나온 자료를 조합해 최대한 정확한 값을 추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완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

각 기업이 자신의 시장세분화 기준에 맞는 데이터를 취합하고 정제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정보 취합과 분석을 반복할 때마다 담당자, 정보 원천, 정보 기준 등이 달라져 기간별 비교 가능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규칙에 따라 상위시장과 세분시장의 계량정보를 산출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핵심적인 도구 ‘시장 데이터 모델’이다.

#계량자료는 물리적 기준에 따라야

시장 데이터 모델은 분석의 출발점이자 입력 요소가 되는 정보 항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각 정보 항목들을 사전 정의된 가공 연산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값을 산출해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데이터 모델을 구축하고 활용하면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에도 축적되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개선을 통해 미래 시장에 대한 예측력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시장 데이터 모델의 개발은 크게 시장 세분화, 데이터 모델 구조 설계, 데이터 모델 개발이라는 세 단계로 이뤄진다.

시장 세분화 단계에서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시장을 구분하고, 전체 및 세분 시장별 규모 등 계량정보를 1차적으로 수집해 조합 추정한다. 통상 넓은 범위의 상위 시장에 대한 값이 특정 하위 시장에 대한 값보다 정확도나 신뢰도가 높으므로 상위 시장 관련 수치를 먼저 확정한 뒤 세분시장별로 값을 배분해 나가며 조율한다. 이렇게 현재 시장의 모습을 일정한 형식으로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는 과정은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교차 검증을 통해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일단 현재 시장의 모습을 재현해내고 나면 그 과정을 자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데이터 모델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실제 데이터 모델 구조는 매우 복잡하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수학 시간에 배운 방정식에서 x, y, z 같은 변수는 수집되는 시장정보나 참조정보이고 이 정보들을 엮어주는 괄호나 덧셈 곱셈 등 사칙연산자의 배치가 데이터 모델 구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이와 같이 시장 세분화 기준과 연계된 시장 데이터 모델에서 산출되는 계량정보들은 위기 및 이슈 인식, 대안 도출을 위한 통찰 창출 도구로 기능한다. 경영 의사결정을 위한 대안 가설을 생성하고 입증하는 데 모두 필요한 중요 도구다. 또 중요한 경영상의 의사결정을 할 때도 요긴하게 활용된다. 잠재력이 가장 높은 시장을 파악해 영업 자원을 집중한다든지, 아직 진출하지 못한 신규 시장에 투입할 새로운 팀을 꾸린다든지 하는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각종 기획안의 재무성과 예측, 전체 또는 세분시장 단위의 시장점유율 및 핵심 성과지표 측정, 생산계획 운용을 위한 판매량 예측 등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매우 많다.

시장 데이터 모델을 개발하고 나면 특정 상품의 잠재시장 규모 파악, 수익성 조사, 기존 제품의 영업성과 확대를 위한 잠재 고객기반 조사 등 자주 활용되는 조사 분석 활동별로 적합한 방법론을 마련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프로세스 및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때 특히 중요한 것이 제대로 된 정보원천을 파악하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기업 단위의 정보 수집만으로는 국가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예컨대 미국 기업이 동남아 시장에 진출해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경우 기업 단위로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해당 매출액이 동남아가 아닌 미국의 시장 규모를 나타내는 수치에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 보면 시장 총 규모에는 변화가 없지만 동남아 시장의 수요를 측정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왜곡된 값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오류를 방지하고 기업의 마켓 인텔리전스 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정보원천이 필요하다. 특히 시장 규모나 수익성과 같이 상시적으로 파악하고 활용해야 하는 정보는 일관된 기준으로 정기적으로 데이터를 내놓는 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동남아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엔에서 제공하는 국가 간 공산품 수출입 통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양질의 정보원천·현장정보 활용을

기존의 사례를 통해 미뤄볼 때 전문적 정보원천을 활용하는 경우 업무 시간이 5~10배 정도는 절약되며 도달 가능한 정보의 범위 역시 2~3배 이상 넓어진다.

전문적 정보원천을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기업 내부와 영업 현장에서 수집된 정보를 활용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비록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은 의사결정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의 첩보 수준이거나 개인적인 판단과 추정에 의거한 정보 조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광범위하고도 살아 있는 가장 최신의 현장 정보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용할 수 있다.

이렇게 영업사원, 대리점, 개발팀 등에서 나오는 다양한 현장 정보를 감사된 공시자료, 신뢰도 있는 분석가 의견, 전문기관의 정보 등 신뢰할 수 있는 외부정보와 교차 검증하면 시장과 기업에 대한 인식이 더욱 정확해지고 미래 예측의 정성적·정량적 정확도도 획기적으로 높아져 궁극적으로 과학적인 경영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켓 인텔리전스를 구축하겠다고 나서는 기업들은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컨설팅 업체와 같은 외부 기관과 협업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내재화’에 대한 계획인데, 다음 회에서는 마켓 인텔리전스를 내 것으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방안을 소개한다.

오용석 <언스트앤영 한영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