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파산 보고받은 MB "이자 따지지 말고 달러부터 확보하세요"
“어려울 때는 현금을 쥐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금리가 높더라도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하지 그랬어요. 미국 일본 중국과 통화스와프(교환)를 추진해 보세요.”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자금난에 시달리다 파산을 선언한 다음날인 2008년 9월16일 오후 4시30분,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리먼 사태 대응방안을 긴급 보고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현금’을 강조하며 한·미 통화스와프를 지시했다.

며칠 전 외평채 발행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해 곤혹스러워하던 강 장관에게 이 대통령은 말을 이어갔다. “내가 기업을 해봐서 아는데, 위기 땐 무조건 현찰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이자를 따질 필요가 없어요”. “예, 알겠습니다”며 물러나려는 강 장관에게 이 대통령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또 한 가지 명심할 건 위기는 기회라는 겁니다. 평상시엔 기업이나 국가의 순위가 잘 바뀌지 않아요. 하지만 위기 때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바뀝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청와대를 빠져나온 강 장관은 자동차 안에서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3일간의 추석 연휴(9월13~15일)를 끝내고 첫 개장한 주식시장은 거래가 시작되자마자 투매 사태가 벌어졌다. 거래소는 주가 폭락을 진정시키기 위해 5분간 거래를 정지시키는 ‘사이드카’까지 발동했다. 하지만 이날 코스피지수는 6.10%(90.17포인트) 떨어지면서 1400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코스피시장에서만 하루 동안 시가총액 51조원이 날아간 것.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50.9원 폭등(원화값 폭락)하면서 1160원을 기록했다. 4년1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원·달러 환율이 하루에 50원 넘게 오른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도 안돼 터진 리먼 사태는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과 정책)’의 궤도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이후 진행된 수출과 내수의 동반 침체는 한국 경제의 2009년 성장률을 사실상 ‘제로’(0.3%)로 끌어내렸다. MB노믹스의 비전이자 목표인 ‘747’(7% 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 중 성장 목표가 출발부터 좌절된 것이다.
리먼 파산 보고받은 MB "이자 따지지 말고 달러부터 확보하세요"

○‘폭풍 전야 고요’에 속아

2008년 하반기 한국 경제를 뒤흔든 ‘리먼 쇼크’는 예견된 것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첫 기획재정부 차관(2008년 3~7월)이었던 최중경의 회고. “2008년 초 인수위원 때 살펴보니 외환사정이 너무 취약했다. 내가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전신) 국제금융국장일 때 한국은 1200억달러의 순채권국이었다. 그런데 그게 제로(0)가 됐더라. 단기 채무 비중도 크게 늘어나 있었다. 가장 심각한 건 경상수지였다. 경상수지 흑자액은 2006년부터 100억달러 밑으로 떨어져 2008년 들어선 급기야 적자로 돌아섰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여진이 커지면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부가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팽배한 ‘디커플링(decoupling)’에 대한 기대심리였다. ‘미국 경제는 어렵더라도 아시아 경제는 중국 덕분에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다. 미국과 아시아 경제는 따로 논다’는 분석이었다. 이걸 너무 믿었던 게 실수였다.

당시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이었던 신제윤의 회고.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우리 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이란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게다가 8월엔 스페인이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국채를 발행했다. 그러자 세계 금융시장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폭풍 전야였다.”

○‘9월 위기설’에 외평채 시도

고요했던 8월, 정부는 10억달러어치의 외평채 발행을 준비했다. 마침 만기가 돌아온 외평채의 상환을 위한 일상적 발행이었다. 그때 돌발 상황이 터졌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9월1일자에 ‘한국이 검은 9월로 향하고 있다(South Korea heads for black September)’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한국의 ‘9월 위기설’이었다.

세계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의 국채 만기가 9월에 몰려 있어 외화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기사였다. 외평채 발행을 위한 해외 로드쇼(투자설명회)를 준비하던 재정부 신 차관보의 머릿속엔 1997년 11월 초 한국의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홍콩 페레그린증권의 보고서 제목이 오버래핑됐다.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Get Out of Korea. Right Now)’. 그의 회고.

“일단 재정부 기자실로 뛰어 내려가서 ‘1997년 말과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내 언론의 위기설 후속 보도를 막는 게 급했다. 그러고 나서 국제금융 전문가들을 불러 ‘우리가 10억달러의 외평채를 발행하려고 하는데 되겠느냐’고 물었다. 안될 거라고 말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다시 기자실로 내려가 큰소리를 쳤다. ‘내가 외평채 발행으로 우리 경제가 위기인지, 아닌지 보여주겠다.’ 한 기자가 ‘발행 못하면 어쩔거냐’고 묻기에 이렇게까지 답했다. ‘한국에 안 돌아오겠다’”

정부는 재정부 신 차관보와 정은보 국제금융정책관(국장)을 각각 단장으로 외평채 발행을 위한 2개의 로드쇼 팀을 짜 9월8일 해외에 파견했다. 신 차관보는 영국 런던과 미국 보스턴을 돌고, 정 국장은 홍콩과 싱가포르를 찍은 뒤 9월10일 뉴욕에서 서로 만나 발행금리를 확정한 뒤 외평채를 발행한다는 작전이었다. 로드쇼 팀이 출국하던 날은 분위기가 좋았다. 마침 미국 재무부가 모기지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정부지급보증(사실상 국유화)을 발표하면서 그날 하루 반짝 시장상황이 호전됐다. 신 차관보는 강 장관으로부터 외평채 최고 가산금리(미국 국채금리에 얹는 금리) ‘가이드라인’을 연 2.0%로 받아 기분 좋게 비행기에 올랐다.

○월가 투자자 “돈이 말랐다”

자신감에 찬 신 차관보는 런던 로드쇼에서 외국 IB(투자은행)들에 “돈 벌 기회를 놓치지 말라”며 기염을 토했다. 그런 신 차관보는 미국 보스턴에 도착해 악재와 부딪쳤다. 한국의 산업은행이 검토해왔던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포기한다는 기사가 나온 것. 이 뉴스는 국제금융시장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썰렁한 보스턴 로드쇼를 마치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동차를 달려 뉴욕에 도착한 신 차관보는 절망적인 얘기를 듣는다. 신제윤의 회고.

“뉴욕에서 한 사모펀드(PEF·프라이빗 에쿼티펀드)를 찾아갔더니 인도인 책임자가 내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라. 월스트리트에 돈이 말랐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주간사 6곳(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바클레이즈 UBS HSBC 삼성증권)에 1억달러어치씩만 책임지고 팔라고 했다. 나머지 4억달러어치는 편법이지만 검은 머리 외국인, 즉 뉴욕에 나와 있는 삼성생명과 국민연금 등을 동원해 인수시킬 생각이었다.”

이런 비상계획까지 세웠지만 인수하겠다는 외국투자자들이 요구한 금리는 너무 높았다. 10일 뉴욕 맨해튼에서 연 콘퍼런스콜에서 투자자들은 가산금리를 연 2.5%에서 3.0%까지 불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날 미국의 폭스뉴스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외평채 금리는 더 뛰었다(외평채 가격은 하락). 어쨌든 강 장관으로부터 받아온 가산금리 마지노선(연 2.0%)을 훌쩍 넘겨 외평채를 헐값에 발행할 수는 없었다. 신 차관보는 정 국장과 마라톤 회의를 한 끝에 발행 포기를 결정하고 서울의 강 장관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강 장관도 “그런 조건이라면 접고 들어오라”고 했다.

강만수의 회고. “그땐 연 2.5% 이상의 가산금리로 외평채를 발행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높은 금리로 한국이 국채를 발행하면 시장에 ‘한국이 달러가 얼마나 급했으면…’이란 나쁜 사인을 줄 수 있었다.” 여하튼 한국이 외평채 발행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신제윤의 회고. “외평채 발행 실패의 장본인이 나라고 생각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뉴욕공항의 대한항공 라운지에서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며 동행했던 주간사 삼성증권의 김석 부사장과 폭탄주로 통음했다.”

신 차관보 일행이 한국에 돌아온 12일 다음날부터 마침 추석연휴(9월13~15일)가 시작됐다. 언론의 신랄한 보도에 며칠은 시달릴 줄 알았던 신 차관보로선 추석 연휴로 신문이 휴간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연휴 마지막 날이자 월요일이던 15일 미국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들어왔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리먼브러더스,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 거대한 폭풍이 자신을 따라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었다.

특별취재팀 mbnomics@hankyung.com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 외평채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줄인 말. 정부가 외환을 사고팔기 위해 조성하는 것이 외국환평형기금, 이 기금의 밑천을 조달하는 수단이 외평채다. 외평채는 원화와 달러 표시 두 가지로 발행한다. 달러값이 급등(원화값 급락)하면 정부가 해외에서 달러 표시 외평채를 발행해 조달한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에 풀어(원화 흡수) 달러값을 떨어뜨린다. 반대로 원화값이 올라가면 국내에서 원화표시 외평채 발행으로 쌓아 두었던 원화로 달러를 사들여 원화가치를 안정시킨다.

달러표시 외평채는 정부가 해외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국채다. 때문에 외평채 금리는 외국투자자들이 한국의 신인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바로미터다. 금리가 높으면(채권 가격이 싸면) 그만큼 신인도가 낮은 것이고, 반대로 금리가 낮으면(채권 가격이 비싸면) 신인도가 높은 것이다. 2008년 9월 정부가 외국투자자들을 상대로 외평채를 발행하려 할 때 투자자들이 금리를 높게 부른 것은 그만큼 한국의 신인도를 낮게 봤다는 의미다.

○ 이 시리즈는 매주 화·목요일 연재합니다. 1,2회 ‘한·미 통화스와프 막전막후 상·하’는 지난 4일과 6일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