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그늘…中企 '동산담보' 대출 급증
인천에 있는 휴대폰 부품업체 A사는 운영자금이 모자랐지만 마땅한 부동산이 없는 탓에 담보대출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미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쓴 상황이라 추가 대출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A사는 최근 신한은행으로부터 기계를 맡기고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난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곧바로 공작기계를 맡기고 신용대출보다 1%포인트가량 낮은 연 5% 중반대의 금리로 5000만원을 빌렸다. 서울에 있는 인쇄업체 B사도 인쇄기계를 맡기고 기업은행으로부터 연 5.5% 금리로 2억원을 대출받았다. 충남 보령의 영농조합법인 C사는 키우던 소 137마리를 담보로 잡고 농협에서 연 5% 이자를 무는 조건으로 1억원을 빌렸다.

각종 기계와 원자재 등 동산(動産)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는 중소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 5일 금융당국 및 은행들에 따르면 국내 17개 은행의 ‘동산담보대출’ 취급액이 한 달 만에 1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신청 업체 수는 506개사에 달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8일 동산담보대출 제도를 시행할 당시 예상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규모다.

은행별로 보면 중소기업 거래가 많은 기업은행이 234억원으로 동산담보대출 취급액이 가장 많았다. 외환은행이 213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신한·하나·국민·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도 각각 100억원대 실적을 올렸다. 주로 담보로 잡은 동산은 공작기계 등 유형자산(400억원)과 후판·철근 등 재고자산(382억원), 매출채권(276억원)이 대부분이었다. 소·쌀·냉동생선 등 농·축·수산물은 2억원으로 비교적 적었다. 담보 가치 평가나 관리가 어려운 탓이다.

은행권의 동산담보대출 취급액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경기침체 여파로 인해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은행 문턱이 여전히 높고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 동산담보대출이 새로운 자금조달 루트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동산담보대출 활성화를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 중이다. 우선 감정평가사협회에 동산 감정평가 전문과정을 신설해 전문인력을 늘리기로 했다. 특히 은행들의 담보 자산을 하나로 통합·관리하는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채무불이행 시 은행이 보유한 담보를 처분하기 위한 경매사이트를 만드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 동산담보대출

부동산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대출 한도가 꽉 찬 중소기업을 위해 출시된 실물 재산 담보대출. 담보로 맡길 수 있는 동산은 유형자산, 재고자산, 농·축·수산물, 매출채권 등이다. 동산에 대한 담보인정비율은 감정 가격의 40%이며 금리는 일반 신용대출보다 평균 0.8~1%포인트가량 낮다.

장창민/김일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