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은메달이었다. 예선에서 실격 판정을 받아 바닥까지 추락했던 ‘마린보이’ 박태환은 29일(한국시간) 국제수영연맹(FINA)의 판정 번복으로 기사회생하며 400m 결승전에서 역영을 펼쳤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이날 역전 드라마의 배후에는 대한체육회와 경기단체의 철저한 대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FINA가 실격 판정을 번복한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다. 박태환은 전체 4위의 기록으로 예선을 통과하고 나서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심판단이 부정 출발했다고 판단해 실격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후 대표팀은 신속한 대응을 했다. 안종택 수영대표팀 감독은 30분 이내에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는 규정에 맞춰 경기 종료 22분 만에 이의신청서를 작성해 FINA에 제출했다. 심판위원회는 현지시간 오전 11시50분께 박태환이 ‘예비 구령 이후 출발 전에 박태환의 몸과 어깨가 조금 움직였다’는 실격 결정 이유서를 전달해 왔다.

선수단은 곧바로 2차 항소를 제기했다. 박태환은 당시 400m 경기를 포기한 채 다음날 열릴 200m를 준비하기 위해 보조 풀에서 훈련하고 있었다. 2차 항소에 따른 FINA 상소위원회는 오후 2시30분에 열려 비디오 판독이 이뤄졌다. 상소위원회는 ‘박태환이 미세하게 움직였던 것은 맞지만 고의적이거나 기록에 영향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란 결론을 내렸다. 실격 판정은 번복됐고 박태환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대한체육회(KOC)의 오심 대응 교육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아쿠아틱센터에서 항소과정을 끝까지 함께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체조 양태영 선수의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의신청 과정과 방법 등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시뮬레이션 훈련을 해왔다”고 말했다.

오심으로 메달을 날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동성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밀려서 금메달을 날렸다. 체조의 양태영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전산상 착오로 점수가 잘못 나와 금메달을 놓쳤다.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인력이 각 경기단체에 거의 없었고 이의 제기 절차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KOC는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각 종목 코칭스태프에게 오심이 나왔을 때 대응 방안을 미리 숙지하도록 했다. 종목별로 판정에 대해 소청하는 절차를 매뉴얼로 만들어 지급하며 “미리 소청 절차를 확실히 알고 가야 오심이 나와도 억울한 불이익을 없앨 수 있다. 벤치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안 감독이 22분 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기 후 30분 이내에 해당 팀 감독이 100달러를 내고 서면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태환은 400m 결승전에서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 초반부터 역영을 펼쳤다. 하지만 마지막 350m 구간에서 중국 쑨양의 스퍼트에 역전을 허용하며 3분42초06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연패에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예선 실격이라는 정신적 충격을 딛고 자기 페이스대로 경기를 펼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한편 예선에서 박태환에게 실격 판정을 내린 현장심판은 중국인이 아닌 캐나다 국적의 빌 호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오심으로 인해 결선 진출자 8명 중에는 박태환 대신 공교롭게도 캐나다의 라이언 코크런이 포함될 뻔했다. 심판 국적을 둘러싼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