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총장 퇴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일 열린 KAIST 이사회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서 총장 퇴진 논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증폭시켰을 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사회는 이날 서 총장에 대한 ‘계약해지’ 안건을 의결하려 했지만, 상정조차 하지 않고 회의를 끝냈다. 이사회 직전 오명 KAIST 이사장과 서 총장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로 합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사회가 끝나고 양측이 내놓은 해석을 보면 문제가 해결됐다는 증거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 이사장은 “서 총장이 모든 것을 나에게 위임했다”고 설명했지만, 서 총장 측은 “총장 퇴진 사유로 제기된 쟁점들의 진상을 규명한 뒤 거취 문제도 서로 협의해 결정한다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더 큰 문제는 이사회가 보여준 무기력함이다. 이사회에 ‘계약해지’ 안건이 상정된다는 걸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는 이사가 있었는가 하면, 실제 이사회에선 이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는데도 왜 바뀌었는지 명쾌하게 답하는 이사가 없었다.

이사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던 오 이사장은 정작 경종민 KAIST 교수협의회장에겐 “총장이 빠른 시간 내에 사퇴하도록 모든 일을 확실히 마무리지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오 이사장의 석연치 않은 이사회 운영이 상당수 이사들을 거수기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KAIST 내부에서는 이사 선임권을 교수평의회와 총동문회 등이 3분의 1씩 나눠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총장 퇴진 논란 속에 힘을 얻은 학내외 세력들이 저마다 역할 확대를 꾀하는게 사실이라면 KAIST의 앞날이 더 암울해질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총장이 오더라도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개혁을 주도하기 어려워질 게 분명해서다.

과학계 원로들은 그런데도 오 이사장이 서 총장을 내보내는 데 급급, 자칫 이들 세력의 주장에 힘을 보탠다면 서 총장과 함께 동반 사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지적까지 내놓고 있다. KAIST의 발전은 서 총장 퇴진만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게 과학계의 진단이다.

김태훈 중기과학부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