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현재 경제상황이 디플레이션 단계로 진입했다고 판단하지 않지만 경기가 둔화 국면인 만큼 비상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에 무게 중심으로 두고 있다.

금융 부문에서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위한 정부 정책으로 자칫 서민과 중소기업의 은행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권역별 비상계획을 마련해 유사시 유동성도 지원할 방침이다.

거시경제 측면에선 투자 확대를 통해 내수 확충을 꾀한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미약해 재정투자를 늘리고 민간 투자를 활성화해 경기 둔화에 대비하려는 조치다.

다음달에는 현장밀착형 기업애로 해소 대책을 담은 '스몰볼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민ㆍ中企 금융지원 집중…"인위적 증시부양은 없다"
금융당국은 아직 국내 금융시장이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만, 경기가 침체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만큼 금융 측면에서 필요한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정은보 사무처장은 18일 "현 상황이 경기순환 주기에서 거쳐 가는 불황기인지, 장기 침체의 서막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며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비해 중소기업과 서민 등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지원 정책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햇살론과 미소금융 등 실적이 부진한 서민금융 상품을 활성화하고 자산관리공사와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 지원 제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서민금융 대책을 검토 중이다.

중소기업에는 대출심사 면책제도 등 올해 상반기에 발표한 종합 지원방안을 차질 없이 실행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자산가치 하락은 시장 가격의 문제이므로 당국이 섣불리 개입할 게 아니라는 견해를 보인다.

정 처장은 "인위적인 증시부양책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안정 제도를 손질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현장 감독을 통해 디플레이션 공포를 완화할 방침이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은행, 증권, 보험 등 권역별 비상계획을 가동해 긴급자금 지원이나 유동성 확충 방안을 실행에 옮길 계획이다.

현재로선 저신용 다중채무자의 부채상환 위험을 줄이는 은행권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을 활성화하고 7등급 이하 저신용층의 신용등급을 재분류해 이들이 긴급자금을 보다 낮은 금리에 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금융정책ㆍ감독으로 디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여러 당국자의 공통된 인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양수기'로 땅을 적시는 것뿐이다.

완벽한 해갈에는 `비'가 필요하다"며 세계 경기가 회복하지 못하는 한 경기 침체는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투자확대로 내수 부양…8월 '스몰볼' 정책 발표
정부는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 흐름에 우리 경제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경제활력을 불어넣는 데 고심하고 있다.

우선 재정투자와 민간투자를 늘려 내수를 떠받치기로 했다.

국내총생산(GDP)이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의 합으로 구성되는데, 현 경제상황에서 소비와 수출이 어렵다면 투자와 정부지출로 경기둔화를 상쇄하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하반기에 여유자금을 활용하거나 집행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재정투자를 8조5천억원 증액할 방침이다.

'상저하고(上低下高)'란 경제 전망을 바탕으로 상반기에 재정의 60%를 조기 집행했던 정부는 하반기에도 경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회복세가 더 더디어질 것으로 보이자 재정투자를 늘려 재정의 경기보완적 기능을 보강한 것이다.

그 목적으로 각종 기금의 여유자금을 활용해 하반기 지출을 2조3천억원 늘려 서민생활 안정, 중소기업ㆍ소상공인 지원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 회계연도로 넘기거나 올해 다 쓰지 못하는 예산을 평년보다 최소화해 4조5천억원 가량 재정을 더 투입하는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또 경기보완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중심으로 공공투자를 1조7천억원 확대한다.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설비투자펀드'란 카드를 꺼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3조원 규모로 기금을 조성해 중소기업에 설비투자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선전하는 대기업은 나름 설비투자를 착실하게 해 나가고 있지만 중소ㆍ중견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8월 중에 '스몰볼' 정책을 다시 내놓는다.

단타 위주의 팀플레이를 가리키는 야구용어에서 나온 말로, 작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겠다는 뜻이 있다.

이를 위해 각종 산업ㆍ업종별 단체와 지방자치단체, 중소기업 옴부즈만으로부터 기업애로사항을 발굴하고 있다.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다음달 개선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음달 초 발표 예정인 세법개정안에도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관련 비과세ㆍ감면의 일몰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경기부양 의지를 담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세제판 스몰볼'인 셈이다.

일몰 연장을 추진하는 R&D 조세지원제도는 신성장동력산업 및 원천기술 R&D 세액공제, 연구개발관련 출연금 등 과세특례, R&D 설비투자 세액공제 등이다.

기술을 이전하거나 취득하는 데 따른 비용의 세액공제 기간도 연장 검토 대상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경제상황을 디플레라고 보지 않지만 글로벌 교역 둔화에 따라 경제회복세가 미약해 우리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며 "당장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하기보다 위기의 장기화에 대비해 정책 여력을 비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