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사태' 실물경제 타격 막아라…靑, 비상경제 회의
“유로존 위기는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그럭저럭 버티기)’로 장기화돼 세계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도 있다. 한국은 금융보다 실물경제 타격이 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경제전문가들은 최근 유로존 위기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대부분 참석자들은 그리스 재정위기에서 촉발된 유로존 위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며 “우리 경제는 금융위기보다는 대(對)유럽 수출 감소로 인한 실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금융보다 실물경제 타격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관련, 경제 논리로 볼 때는 가능성이 적지만 정치적 결정에 따른 탈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씨티그룹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높게 본 반면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등은 가능성을 낮게 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경기는 장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이 주를 이뤘다. 한 전문가는 “주변국 재정 상황이 나빠 유럽 경제는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기는 힘들다”며 “올해와 내년엔 리세션(경기후퇴)에 빠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그 후에도 성장 속도는 매우 느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JP모건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와 관계없이 올해 유럽 경제성장률을 완만한 침체 땐 -0.3~-0.4%,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위기가 확산될 땐 -2~-3%로 점쳤다.

또 다른 전문가는 “미국 경제도 기대만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도 있다”며 “각국이 위기 속에서 환율 싸움을 할 수도 있고, 보호무역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난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도 “유럽을 중심으로 리먼 사태와 같은 위기가 또 올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은 버틸 것

유로존 위기의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위기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많았다. 한 전문가는 “은행과 외환시장 부문만 이상이 없으면 우리 경제는 견딜 수 있다”며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성장률이 둔화될 수 있으나 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기관 관계자는 “한국 경제는 그나마 수출 다변화로 선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멜트 GE 회장도 “독일과 함께 한국이 거의 유일하게 현재 금융위기를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어쩔 수 없더라도 내부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전문가는 “국내 불안요인은 가계부채 부동산 경기침체 저축은행 문제 등”이라며 “이런 문제들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소비를 위축시키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며 “물가와 가계부채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유럽의 경제 위축에 따른 정부의 대응은 모든 시나리오를 갖고 철저히 준비하라”고 관계장관들에게 지시했다.

차병석/서정환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