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앤펑, 전세계 3만개 협력업체 오케스트라처럼 지휘…공장 없이 수백억弗 옷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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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 리앤펑
제조원가 싼 공장 찾아 외주…단추는 중국, 실은 파키스탄…
협력社 단가 쥐어짜기 금물…매출 의존도 70% 안넘게 유지
제조원가 싼 공장 찾아 외주…단추는 중국, 실은 파키스탄…
협력社 단가 쥐어짜기 금물…매출 의존도 70% 안넘게 유지
이 회사는 옷을 팔아 연간 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그러나 옷을 만드는 공장도, 재봉하는 직원도 없다.
홍콩 의류업체 리앤펑 얘기다. 리앤펑은 생산시설 없이 공급망 관리를 통해 연간 20억벌이 넘는 옷을 만들어 판다. 원자재 구매, 재봉 등 모든 생산과정은 협력업체가 맡는다. 리앤펑은 협력업체를 관리만 할 뿐이다. 리앤펑은 전 세계 40개국에 있는 약 3만개의 공장을 관리한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200만명 이상의 인력을 움직인다. 하지만 리앤펑이 직접 월급을 주는 직원은 1만5000명에 불과하다.
리앤펑 계열사 중 유통 업체인 IDS그룹, 편의점 체인인 써클K 등 3개사가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페라가모의 아시아지역 유통망과 완구업체 토이저러스의 아시아 판매권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비즈니스위크는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 29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리앤펑은 지난해 약 20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리앤펑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앤펑은 1906년 설립됐다. 처음에는 장난감, 원단 등의 무역중개업체로 출발했다. 성장궤도에 들어선 것은 창업자 펑팍류가 손자인 빅터 펑 회장을 회사로 불러들이면서부터다. 펑 회장은 미국 MIT와 하버드대를 나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1976년 경영자로 변신했다. 펑 회장은 강의하던 이론을 현장에 접목했다. 먼저 전산화를 추진했다. 물류와 재고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비용을 줄였다.
펑 회장은 자체생산 대신 외주시스템도 도입했다. 이를 위해 리앤펑은 우선 생산시설을 정리했다. “공장을 갖고 있으면 협력업체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고, 이는 원활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리앤펑은 1990대 초 협력업체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공급자관리(SRM·supplier relationship management)시스템을 개발했다. SRM의 핵심은 외주다. 리앤펑은 제조원가가 싼 공장을 찾는다. 디자인, 원자재 조달, 제조 관리, 운송, 통관도 협력사에 맡긴다. 리앤펑이 특정 의류를 주문받으면 단추는 중국, 지퍼는 일본, 실은 파키스탄에서 조달해 방글라데시 협력업체 공장에서 봉제하는 식이다. 1990년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각되자 리앤펑은 급성장했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출이 연평균 22%씩 늘었다.
리앤펑은 스스로를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한다. 지휘자도 악기를 다룰 수 있지만, 직접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 펑 회장은 “리앤펑의 역할은 공급업체를 조율해 전체적으로 훌륭한 사운드를 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업체 일감 적당히 줘라”
리앤펑은 협력업체에 단가를 낮추라고 압력을 가하거나 쥐어짜지 않는다. 협력업체와의 관계에 ‘30/70’ 규칙을 적용한다. ‘협력업체 생산능력의 30%보다는 많게, 하지만 70%는 넘지 않게’가 핵심이다. 30%, 70%는 리앤펑에 대한 매출의존도를 말한다. 협력업체가 리앤펑에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다. 리앤펑은 이를 ‘느슨한 연계(loose coupling)’라고 표현한다.
펑 회장은 이런 관계를 액체, 고체, 기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30% 미만은 기체에 해당한다. 협력업체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70%가 넘으면 고체상태로 유연성이 전혀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펑 회장은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액체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력업체는 리앤펑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거래처를 뚫어야 한다. 협력업체가 다른 회사들과도 일할 수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리앤펑의 경영방침이다.
펑 회장은 “우리 네트워크에는 항상 새로운 협력업체가 드나들 수 있다”며 “힘있는 발주업체가 협력업체를 압박하게 되면 협력업체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2차 협력업체들에 또 다른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체 네트워크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리앤펑은 또 새로운 협력업체를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때 상호 공생하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리앤펑은 절대 협력업체가 하고 있는 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다. 협력업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공생이라고 펑 회장은 강조한다.
○“관료주의를 경계하라”
리앤펑은 유연한 조직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직이 유연해야 위기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펑 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그는 기업이 커지면 관료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혁신을 게을리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조직 문화를 ‘크지만 작은 기업(big small company)’이라고 설명한다.
리앤펑은 유연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 내부에 작은 사업단위(유닛)를 만들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한다. 한 유닛당 구성원은 20~50명 정도다. 리앤펑에는 현재 300여개의 유닛이 활동한다.
리앤펑에서 이 유닛의 리더들은 ‘작은 존 웨인(Little John Waynes)’이라고 불린다. 미국 서부 영화에 출연한 배우 존 웨인이 총잡이들을 이끄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존 웨인’들은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처럼 일한다. 유닛 운영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 자신의 유닛이 어떤 사업을 할지 아이디어를 내고, 이익을 내기 위한 전략도 짠다. 이윤이 나면 그중 얼마를 성과급으로 가져갈지도 스스로 정한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
홍콩 의류업체 리앤펑 얘기다. 리앤펑은 생산시설 없이 공급망 관리를 통해 연간 20억벌이 넘는 옷을 만들어 판다. 원자재 구매, 재봉 등 모든 생산과정은 협력업체가 맡는다. 리앤펑은 협력업체를 관리만 할 뿐이다. 리앤펑은 전 세계 40개국에 있는 약 3만개의 공장을 관리한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200만명 이상의 인력을 움직인다. 하지만 리앤펑이 직접 월급을 주는 직원은 1만5000명에 불과하다.
리앤펑 계열사 중 유통 업체인 IDS그룹, 편의점 체인인 써클K 등 3개사가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페라가모의 아시아지역 유통망과 완구업체 토이저러스의 아시아 판매권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비즈니스위크는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 29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리앤펑은 지난해 약 20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리앤펑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앤펑은 1906년 설립됐다. 처음에는 장난감, 원단 등의 무역중개업체로 출발했다. 성장궤도에 들어선 것은 창업자 펑팍류가 손자인 빅터 펑 회장을 회사로 불러들이면서부터다. 펑 회장은 미국 MIT와 하버드대를 나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1976년 경영자로 변신했다. 펑 회장은 강의하던 이론을 현장에 접목했다. 먼저 전산화를 추진했다. 물류와 재고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비용을 줄였다.
펑 회장은 자체생산 대신 외주시스템도 도입했다. 이를 위해 리앤펑은 우선 생산시설을 정리했다. “공장을 갖고 있으면 협력업체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고, 이는 원활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리앤펑은 1990대 초 협력업체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공급자관리(SRM·supplier relationship management)시스템을 개발했다. SRM의 핵심은 외주다. 리앤펑은 제조원가가 싼 공장을 찾는다. 디자인, 원자재 조달, 제조 관리, 운송, 통관도 협력사에 맡긴다. 리앤펑이 특정 의류를 주문받으면 단추는 중국, 지퍼는 일본, 실은 파키스탄에서 조달해 방글라데시 협력업체 공장에서 봉제하는 식이다. 1990년대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각되자 리앤펑은 급성장했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출이 연평균 22%씩 늘었다.
리앤펑은 스스로를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한다. 지휘자도 악기를 다룰 수 있지만, 직접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 펑 회장은 “리앤펑의 역할은 공급업체를 조율해 전체적으로 훌륭한 사운드를 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업체 일감 적당히 줘라”
리앤펑은 협력업체에 단가를 낮추라고 압력을 가하거나 쥐어짜지 않는다. 협력업체와의 관계에 ‘30/70’ 규칙을 적용한다. ‘협력업체 생산능력의 30%보다는 많게, 하지만 70%는 넘지 않게’가 핵심이다. 30%, 70%는 리앤펑에 대한 매출의존도를 말한다. 협력업체가 리앤펑에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다. 리앤펑은 이를 ‘느슨한 연계(loose coupling)’라고 표현한다.
펑 회장은 이런 관계를 액체, 고체, 기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30% 미만은 기체에 해당한다. 협력업체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70%가 넘으면 고체상태로 유연성이 전혀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펑 회장은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액체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력업체는 리앤펑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거래처를 뚫어야 한다. 협력업체가 다른 회사들과도 일할 수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리앤펑의 경영방침이다.
펑 회장은 “우리 네트워크에는 항상 새로운 협력업체가 드나들 수 있다”며 “힘있는 발주업체가 협력업체를 압박하게 되면 협력업체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2차 협력업체들에 또 다른 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체 네트워크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리앤펑은 또 새로운 협력업체를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때 상호 공생하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리앤펑은 절대 협력업체가 하고 있는 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다. 협력업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공생이라고 펑 회장은 강조한다.
○“관료주의를 경계하라”
리앤펑은 유연한 조직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직이 유연해야 위기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펑 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그는 기업이 커지면 관료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혁신을 게을리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조직 문화를 ‘크지만 작은 기업(big small company)’이라고 설명한다.
리앤펑은 유연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 내부에 작은 사업단위(유닛)를 만들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한다. 한 유닛당 구성원은 20~50명 정도다. 리앤펑에는 현재 300여개의 유닛이 활동한다.
리앤펑에서 이 유닛의 리더들은 ‘작은 존 웨인(Little John Waynes)’이라고 불린다. 미국 서부 영화에 출연한 배우 존 웨인이 총잡이들을 이끄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존 웨인’들은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처럼 일한다. 유닛 운영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 자신의 유닛이 어떤 사업을 할지 아이디어를 내고, 이익을 내기 위한 전략도 짠다. 이윤이 나면 그중 얼마를 성과급으로 가져갈지도 스스로 정한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