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트가 새의 지저귐처럼 맑은 선율을 연주하면 시원한 바람소리를 머금은 대금이 그 뒤를 쫓아간다. 가야금이 경쾌하게 현을 뜯으며 탱고 선율을 시작하자 첼로와 바이올린이 화음을 만들며 따라잡는다. 애잔한 해금의 음색은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사랑의 아련함을 노래한다.

국악과 클래식의 크로스 오버 실내악단인 11인조 풀림앙상블. 이들의 음악은 맑은 이슬을 머금은 아침 햇살과 여름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석양의 언덕에 선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서양 악기와 국악기 11대가 한자리에서 연주되지만 어느 악기 하나 툭 튀어나오는 법이 없다. ‘잘 풀린다’는 뜻의 ‘풀림’을 그룹 이름으로 지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어설프게 편곡하는 법도 없다. 100% 창작곡만 고집한다. 2008년 프로젝트 그룹으로 시작해 5년간 아름다운 모험을 함께해온 이들을 서울 개포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풀림앙상블은 지난달 공식 앨범 ‘아침향기’를 발매하고 오는 12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첫 콘서트를 연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퓨전 국악그룹 1세대 ‘슬기둥’ 멤버로 16년간 활동해온 풀림앙상블의 리더 홍동기 씨는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음악감독을 맡아 풀림앙상블과 함께 연주했을 때 각국 정상들이 휘파람을 불며 기립박수를 쳤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8년 스페인 사라고사 엑스포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부산 OECD세계포럼 축하연주, 한·호주 수교 50주년 기념 개·폐막 공연 등 국가 행사에 단골로 초청받아왔다.

홍씨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다”며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돌아와서 서양의 레퍼토리만 반복하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악과 클래식을 섭렵한 그를 위해 실력파 후배들이 의기투합했다. 서울대 음대 현악계열 수석 졸업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음대에서 공부한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남 씨와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예후디 메뉴인 장학재단 등에서 활동해온 첼리스트 길희정 씨가 동참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해금 신동 김유나 씨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대금 소금 단소 연주자 이필기 씨,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와 커티스 음악원 등을 거친 플루티스트 이인 씨, 슬기둥 멤버였던 가야금 주자 김은경 씨,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이자 작곡자 계성원 씨, 기타리스트 신병준 씨, 퍼커셔니스트 정훈 씨, 타악 주자 김영진 씨도 합류했다.

첼리스트 길희정 씨는 “대체 어떤 음악이 만들어질지 궁금했는데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애정이 생기고 이 길에 대해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의 꿈은 많은 결실을 맺었다. 국악 선율이 녹아 있지만 현대 음악처럼 멜로디가 낯설지 않은 데다 편안하게 명상하듯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외국인들을 녹였다. 기업들이 해외 파트너들과 공식 행사를 가질 때마다 먼저 불러줬다.

처음부터 쉽게 화음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해금 연주자 김유나 씨는 “국악은 음정을 피아노로 맞춘 역사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손의 감각으로 음을 맞춘다”며 “처음엔 서양 악기와 음정을 찾아 맞추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플루티스트 이인 씨는 “외국 생활을 오래해서 국악 장단의 매력을 몰랐는데 강약 조절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느낌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기타리스트 겸 단무장 신병준 씨는 “서양 악기는 17~18세기를 지나면서 앰프 없이도 몇 천 석 넘는 공연장을 가득 메울 수 있도록 발달해왔는데 국악기는 음량이 너무 작아서 균형을 맞추는 게 아직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홍씨는 “국악도 클래식도 마니아만을 위한 연주회를 계속할 수는 없다”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우리만의 음악을 창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홍씨의 ‘비워둔 자리’ ‘아침향기’ ‘살며시’ 등을 비롯해 박영란 작곡의 ‘그대 발자취 따라’ ‘어디 있나요?’, 계성원 작곡의 ‘란을 위한 노래’ ‘숨겨진 폭포’, 림스키 코르사코프 작곡의 ‘꿀벌의 기행’, 전통음악 ‘해금 산조’ ‘대금 독주’ 등 19곡이 연주된다. 12일 오후 5시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02)704-6420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