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선의 마키아벨리' 정도전의 사상은 소통
역사에서 철저히 잊혀졌던 정도전은 ‘조선의 마키아벨리’였다. 르네상스시대 마키아벨리는 현실적인 정치철학을 담은 명저 《군주론》을 남겼지만 정작 그는 세상에서 잊혀져 쓸쓸하게 죽었고 그의 책은 금서로 낙인 찍혔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도 500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사상가였지만 국가경영을 둘러싸고 이방원과 갈등을 빚다가 역적으로 몰려 살해됐다.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가 배다른 동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정도전을 역적으로 매도해 왕위 찬탈 명분을 만들었다. 태조실록에는 “간신 정도전 등이 서얼을 후사로 삼아 어른과 아이의 차례를 뒤엎고 적서의 구분을 어지럽히려 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인치(人治)보다 법치(法治), 왕보다 백성을 앞세운 혁명가였다. 그는 “임금은 존귀한 존재지만 그보다 더 존귀한 것은 천하민심”이라며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현실적인 정책들을 펼쳐갔다.

《조선 최고의 사상범》은 정도전이 잊혀진 경위를 비롯해 그가 펼친 민본사상의 배경과 구체적인 실천법을 분석한 책이다. 그의 민본사상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오늘의 정치와 맞닿아 있으며 사회 양극화, 공무원 부패, 세금과 부동산, 교육 문제 등 이 시대의 고민과 관련한 지혜들을 들려준다.

충의를 강조하는 유학자였던 그가 고려를 왜 배신했을까. 그는《맹자》를 탐독하면서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임금은 이미 임금이 아니므로 죽어도 좋다는 부분을 받아들여 임금을 바꿔도 좋다는 혁명적 발상을 하게 됐다. 고려 말 백성들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권력자들이 서로 토지를 빼앗는 바람에 백성 한 사람이 경작하는 땅의 주인이 7~8명에 이르기도 했다. 그 자신도 철거민 신세로 세번이나 강제로 이사했고 10년간 실업자로 지냈다.

어렵게 관직에 나선 그는 지방 관리를 자청해 백성들과 함께 호흡했다.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지방관의 품계를 높이고 중앙 관직은 낮추며, 외직을 거친 사람을 중용해야 한다’는 인사철학을 정립했다. 권문세가의 땅을 빼앗아 신흥사대부와 농민들에게 나눠줘 자영농을 늘렸다.

그러나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과 공업을 약화시키려 했던 것은 한계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