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사범에 대해 신속하게 과징금을 물리려던 제도 개선안이 부처 간 자리다툼 속에 무산됐다고 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과징금제를 삽입해주는 조건으로 법무부가 자신들에게 증권선물위원(1급) 자리를 하나 달라고 요구했으나 금융위가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무부가 겉으로 내세운 논리가 정말 가관이다. 법무부는 형사처벌 아닌 과징금을 매기면 오히려 주가조작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법과 규제가 어떻게 관료들의 밥그릇 문제가 되는지를 우리는 어쩌다 제대로 훔쳐보게 된 것이다.

정부 부처들의 영역 다툼이란 권한과 자리 이권을 놓고 관료집단끼리 충돌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정부가 내건 녹색성장과 신성장산업을 비롯해 저출산·고령화 대책, 보육·육아 정책, IT정책, 영리병원, 금융소비자 보호 등을 놓고 한결같이 부처들 간에 얼굴을 붉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한을 가져오면 조직, 예산에다 퇴직 후 나갈 자리까지 넝쿨째 딸려온다. 규제가 생길 때마다 힘이 생기고 자리가 생기고 돈이 생기기 때문에 관료들은 규제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규제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지대(地代)의 원천이 된다. 그러니 한국 정부의 조정능력지수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는 세계은행의 분석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정치가 갈수록 타락해가는 이유도 다를 게 없다. 국민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가는 멸종되고 정치 자체가 지대 추구행위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이익이 사라진 자리를 지역균형, 골목상권, 중기 적합업종 등의 정치적 수사로 무장한 특정 지역, 집단, 직능단체가 들어가 꿰찬다. 한 이익집단의 지대 추구가 성공하면 이를 지켜보던 다른 집단들이 지대 획득 경쟁에 뛰어들고, 결국 온 국민을 이익집단으로 만들게 된다. 한국 국회에 여야 정당보다 더 강력한 농촌당, 법조당, 약사당, 골목당이 생겨나는 이유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자신의 사익 추구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겉으로는 더욱 공익을 내세운다. 한국 정치와 관료 시스템의 수준이자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