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금융 투기꾼의 미소와 탐욕
수줍게 웃음을 띤 흑인 청년의 표정은 천진난만했다. 미소는 산뜻한 하늘색 니트와 잘 어울렸다. 카메라에 잡힌 그의 차림새는 런던 시내로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 했다. 두 손에 찬 수갑만 없었다면 말이다. 파생상품 무단 거래로 최근 스위스 최대 은행 UBS에 23억달러(2조6330억원)의 손실을 입힌 크웨쿠 아도볼리 얘기다. 지난달 중순 체포돼 경찰서로 향하던 그의 얼굴에서는 사죄의 흔적을 찾긴 어려웠다.

서른한 살의 젊은 트레이더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던 것일까,아니면 갑작스런 스포트라이트에 우쭐했던 것일까. '탐욕'이 시장의 속성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절제하지 못한 욕망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온다. 1630년대에는 그래서 튤립 한 뿌리가 집 한 채와 맞먹지 않았던가.

요즘 금융공학을 동원하는 파생상품 시장은 아도볼리와 같은 젊은이들의 독무대다. 복잡한 상품구조를 꿰뚫고 동물적 감각으로 승부하는 전쟁터에선 젊은 병사의 과감성과 신속함이 필수다. 그만큼 위험도 크다. 1995년 무리한 파생상품 거래로 232년 역사의 베어링스은행을 망하게 한 닉 리슨은 당시 28세에 불과했다. 3년 전 미(未)승인 선물거래로 소시에테제네랄은행에 70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던 제롬 케르비엘 역시 아도볼리와 같은 31세였다. 리슨 파문 이후 16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최근 영국 BBC방송에서 '망언'을 서슴지 않아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던 한 트레이더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서른네 살의 알레시오 라스타니는 생방송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이 순간을 3년 동안 꿈꿔왔다. 나는 매일 밤마다 잠들기 전에 리세션(경기 침체)이 다시 발생하길 기도한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트레이더들은 각국의 정상들이 경제를 어떻게 고쳐놓을지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의 일은 돈을 버는 것이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견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시청자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이성을 잃은 듯했다.

자본시장에서의 탐욕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특히 선물 · 옵션처럼 승자와 패자의 합이 제로(0)가 되는 시장에선 치열한 머니게임이 벌어진다.

반면 절제된 욕심은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다. 절제는 리스크 관리에서 나온다. 베어링스나 UBS에서 일어난 금융사고를 한 젊은 직원의 탐욕 탓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글로벌 IB들은 리스크 관리 능력을 자랑하지만 그리 믿을 게 못 돼 보인다. 아도볼리는 3년 넘게 제멋대로 투기성 거래를 해왔지만 회사는 눈치채지 못했다. 베어링스는 매번 대박을 터뜨리는 것처럼 보였던 리슨에게 막대한 보너스를 안겨줬다.

"탐욕을 심판하라"는 목소리가 뉴욕 월가를 넘어 미국 다른 도시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시위대가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까지 부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노조까지 가세하면서 시위는 장기전으로 접어들 태세다. 월가 임직원들은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볼멘 소리를 낸다. 그럼에도 리스크 관리라는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것은 월가의 실책이다. 자본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든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시위대 인파를 뚫고 힘겹게 출근하는 월가 사람들이 딱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