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7일 내놓은 올해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부자감세'로 비판받던 법인세·소득세의 최고세율 인하 철회다.

감세는 시장과 자율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의 상징적 정책이었으나 정치권의 끊임없는 요구에 3년 만에 정부가 무릎을 꿇은 것. 글로벌 재정위기와 복지 수요 증가로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고집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역설적으로 올해 세법개정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보다 기존 정책의 철회가 부각된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해 좌절된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의 재추진과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의 보완, 근로장려세제 확대, 일감 몰아주기 과세 등 굵직한 제도의 변화도 적지 않다.

또 나빠진 재정 상황에 따라 세금을 더 걷되 취약층에 대한 비과세ㆍ감면은 연장하고 대기업 중심으로 세수를 늘리는 기조는 올해도 이어졌다.

따라서 올해 세법개정은 재정건전성과 일자리 창출, 공생발전 등에 역점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재정악화에 '부자감세' 3년만에 철회
정부는 애초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 인하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7일 고위 당정협의회 결과에 따라 감세 철회안을 추가했다.

법인세는 중간세율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예정대로 내년부터 22%에서 20%로 낮추되 최고구간 세율은 20%로 내리지 않고 22%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당정은 중간세율 범위는 합의하지 못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2억~100억원 이하로 설정해 중소기업에 혜택을 줘야 한다고 요구한 반면 정부는 중견기업까지 해당되도록 2억~500억원 이하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세법개정안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는 세율 10%, 2억~500억원은 20%, 500억원 초과는 22%를 각각 적용하기로 했다.

소득세는 과세표준 8천800만원 초과분은 내년부터 35%에서 33%로 인하될 예정이었으나 당정협의에 따라 35%를 유지하기로 했다.

감세론자인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감세는 시장과 자율을 중시하는 MB정부의 상징적 정책으로서 정부정책의 일관성 및 대외신뢰도 유지를 고려할 때 예정대로 세율을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으나 결국 소신을 꺾었다.

하지만 정부도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막대한 재정지출로 재정이 급격하게 나빠진 가운데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균형재정 목표를 1년 앞당기겠다고 밝혀 '불감청 고소원'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백운찬 재정부 세제실장은 "글로벌 재정위기에 대응해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고 서민·중산층을 위한 복지재원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 세제로 지원한다
정부는 올해도 세법개정안의 첫 쪽에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고투)를 담아 '고용유인형 세제'로 전환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만 고투에 기본공제를 신설하고 직업전문교육을 받는 고교 졸업생에 대한 공제한도를 늘리는 등의 보완을 거쳤다.

지난해 가장 공들였던 고투가 대기업의 반발과 국회의 문턱에 걸려 임투의 보조 수단으로 전락하자 재수생인 정부가 입시전략을 바꾼 셈이다.

정부가 지난해 냈던 고투는 기업이 고용을 전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해도 세액 공제를 전혀 못받았지만 올해는 기본으로 투자액의 4%(수도권의 대기업은 3%) 공제를 보장하기로 했다.

이는 임투 폐지로 세액 공제 혜택이 줄어드는 대기업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양보한 것이다.

고용창출 효과 측면에서 지난해 방안보다 후퇴했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올해 내놓은 고투의 법정세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가 1%포인트에 그치지만 속을 들여보면 대기업이 불리하다.

고용창출의 기준은 순증 기준으로 고용창출력이 한계에 이른 대기업이 전체 직원규모를 크게 늘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 대해서는 3년 동안 근로소득세를 면제하고 고용을 늘린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4대 사회보험료를 세액에서 빼주는 방안 등도 중소기업을 배려한 세제다.

이밖에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한 것도 취약계층 중심의 고용유인형 세제를 구축하는 차원이다.

EITC 제도의 문제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된 점을 고려하면 다소 뒤늦은 감은 있다.

◇일감몰아주기 과세 등 '공생발전' 앞세워
정부가 세법개정 발표를 열흘 늦춘 것은 이 대통령이 제시한 '공생발전' 화두를 담기 위해서다.

제목도 '공생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2011년 세법개정안으로 달았다.

공생발전의 대표적 사례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다.

정부는 2007년에도 현대차 그룹의 물량 몰아주기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증여세 과세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반발 등에 따라 흐지부지됐으며 이명박 정부 초기의 친기업 기조 등에 따라 과세 방안은 서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공정사회를 강조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4년만에 정부안으로 채택됐다.

재벌 총수 일가의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무상이전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박재완 장관은 "변칙적인 상속ㆍ증여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특수관계법인 간에 일감을 몰아줘 발생한 이익에 대해서는 증여로 의제해 철저히 과세하겠다"고 말했다.

비영리 법인의 편법적 증여를 방지하기 위해 인건비 한도를 설정하고 그 한도를 넘은 금액에 대해 과세하는 것도 공생발전 화두가 반영됐다.

이밖에 명단이 공개되는 고액체납자의 범위를 늘리고 유사석유제품 판매자에 대해서도 과세 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방안도 담았다.

◇당정결과 세수증가 7천300억원→3조5천억원으로‥2013년 균형재정에 청신호

이번 세법개정안의 세수 효과는 2013년까지 3조5천억원 증가로 전망됐다.

서민중산층과 중소기업은 3천억원 줄어드는 대신 고소득자와 대기업은 3조8천억원 늘어난다.

애초 정부안은 2013년까지 7천300억원 증가로 예상됐으나 막판 고위당정협의에서 법인세 중간세율 신설(+2조4천억원)과 소득세 최고세율 현행 유지(+6천억원)가 합의되면서 세수증대 효과가 크게 늘었다.

이는 지난해 정부안의 1조9천억원 증가 효과보다 1조6천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따라서 정부가 균형재정 목표를 1년 앞당겨 2013년에 관리대상수지를 흑자전환한다는 계획에 청신호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해마다 비과세ㆍ감면제도를 정비하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올해 일몰인 42개 제도 가운데 10개만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50개 중 16개 폐지, 2009년의 87개 중 22개 폐지와 비교하면 올해의 성적은 좋지 않은 편이다.

물론 이는 3년 동안 꾸준히 폐지하고 축소한 영향도 있다.

하지만 올해 연구ㆍ개발(R&D) 세액공제를 서비스 분야로 확대해 비과세ㆍ감면 축소 노력이 약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동산 세제도 다주택자에 대한 특혜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대폭 완화했다.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로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밖에 2009년부터 시도된 임투 폐지 추진이 올해도 무산된다면 세수 증가 효과는 낮아질 수 있다.

연간 임투에 따른 세제지원 규모만 2조원이 넘는다.

이미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정부와 국회에 낸 건의문에서 임투 연장을 촉구하는 등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법인세 인하 철회로 반발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