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선임 연구원이 회사를 떠나며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게 보낸 이메일이 네티즌의 눈길을 끌고 있다. 혁신을 용납하지 않는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곱씹은 그의 주장은 LG전자 뿐 아니라 최근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의 소프트 파워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위기의 국내 대기업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게 네티즌들의 지적이다.

19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5년 간 LG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소속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4월 카카오톡으로 이직했다고 밝힌 최 모씨는 지난 16일 자신 블로그(ppassa.wordpress.com/2011/08/16/leaving_lg)에 퇴사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공개했다.

그는 우선 LG전자가 이노베이션(혁신)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이노베이션을 하겠다고 '주장'만 하는 회사라고 지적했다.

이노베이션은 '위험 감수(risk-taking)'가 가능한 문화 속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인데 이 같은 연구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아이디어가 구현될 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 초기부터 투자수익률을 계산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또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는 경직된 문화 또한 크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LG전자가 보안 때문에 이유 없이 막힌 인터넷 사이트가 의외로 많다며 아이디어 조사와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접근조차 막히면 대부분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홈엔터테인먼트(HE) 본부의 경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보안상의 이유로 개인 컴퓨터가 아닌 중앙서버에 접속 후 작업을 하는데 이는 개발자들의 생산성을 엄청나게 갉아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LG전자 내 의사결정 과정이 비합리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없고 특히 최고 경영진이나 연구소장이 언급하면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그대로 의사 결정이 난다는 것이다. 또한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어떻게 한다고 하면 이 역시 비판적인 토론 없이 의사결정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결정 시에 관련자들이 반드시 이유를 이해하고 필요하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돼야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말로는 '주인의식을 가져라'고 말하면서도 연구원들을 주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철부지 중고생으로 대하듯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는 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초 R&D캠퍼스에서 본부와 연구소를 불문하고 지각을 체크해 각 조직별로 통계를 매일 보고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회사가 연구원들을 주인으로 대하지 않는데 주인의식이 생길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최 모씨는 "아쉽게도 CEO로부터 답장은 받지 못했다"면서 "CEO가 답장을 할 회사라면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다수의 네티즌이 격려의 댓글을 쏟아냈고 James 등은 "저는 200X년에 회사를 그만뒀었던 사람으로써 공감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한경닷컴 경제팀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