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분단국가의 군사분계선에서 공연할 수 있다는 점이 저를 한국으로 이끌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갈등은 대부분 대화 부재로 일어납니다. 음악을 통해 갈등을 멈출 수는 없지만 관심과 열정을 북돋아 대화의 물꼬를 틀 수는 있습니다. 남북을 막론하고 한국인 모두 한 곳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음악가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제게 없습니다. "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69)이 2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한반도에 평화의 선율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10일부터 나흘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9곡을 모두 연주한다. 광복절인 15일에는 임진각 야외공연장에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을 선보인다. 중동 분쟁 지역의 젊은 연주자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西東詩集 · West-Eastern Divan Orchestra)'와 한국을 찾은 그는 "이번 연주는 남북한 모두에게 들려주는 것"이라며 "음악으로 영혼이 하나되는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의 지휘자'로 통한다. 유대인인 그는 1999년 팔레스타인 석학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중동의 젊은 연주자들을 모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단원 중에는 아버지끼리 총을 겨누던 사이도 있었다. 악단 이름은 페르시아 상상여행을 다룬 괴테의 동명 시집 제목에서 따왔다. 그가 2005년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연 공연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2008년 라말라에서 또 공연했다. 이스라엘 강경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5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공연할 때는 이스라엘 정부가 국경을 봉쇄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팔레스타인 바이올리니스트 타임 클리피는 "단원들과 때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할 때가 있고,서로 다른 의견을 꺼내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 모든 걸 다 열어놓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플루티스트 기 에시드는 "지금 함께 할 수 없게 된 단원들도 있는데,그럴 때마다 디반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 중동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힘든 과정도 많았지만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하며 그보다 더 큰 걸 얻는다"고 말했다.

바렌보임은 유엔 평화대사이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다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연주할 베토벤의 '합창'은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100만인이여,서로 포옹하라'는 가사로 이뤄져 있다. 소프라노 조수미,메조소프라노 이아경,테너 박지민,베이스 함석헌도 함께한다. 그는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눈을 감아도 들을 수 있는 건 음악이다. 베토벤의 강렬한 메시지를 한국 땅에 울려퍼지게 할 기회를 갖게 돼 기쁘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