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패닉(공포)이 증시를 흔들었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코스피지수 1900선도 패닉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패닉셀링(공포 매도)'의 방아쇠는 외국인이 당겼다. 이들은 지난달 12일 순매도로 방향을 튼 후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3조677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 처음 개장한 8일 외국인은 오후장 들어 저가 매수에 나서며 순매도 규모를 줄였다. 일부 증시전문가들은 낙폭 과대로 인한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 등을 들어 외국인이 복귀 시기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태도 바뀌나

한국 증시의 급등락은 외국인의 매수 · 매도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외국인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2008년 9월16일부터 10월29일까지 5조7411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코스피지수를 1000선 아래로 끌어내렸다. 이후 순매수로 돌아서며 코스피지수도 상승 반전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의 더블딥 우려가 불거진 지난달 12일부터 이날까지 외국인은 3조6775억원을 내다팔았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미끄럼을 탔다.

외국인의 매매 행태 변화는 8일 감지됐다. 이날 순매도 규모는 816억원으로 지난 5일(4053억원)보다 적었다. 오후장 들어서는 매수에 나서며 순매도 규모가 줄기도 했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LG 우리금융 한화케미칼 KB금융 삼성증권 현대건설 등 낙폭이 큰 우량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박정우 S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외국인은 유가 급락 등 상품 쪽 포지션이 망가지면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한국 등 신흥국 주식부터 팔아치운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9일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긍정적 코멘트와 12일 발표될 소매판매지수 등이 외국인 복귀를 포함해 매수강도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계 창구 통해 저가 매수 활발

외국계 증권사에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한 외국계 증권사 주식영업부문 관계자는 "시장이 패닉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는 동안 일부 외국인은 주식 매집에 들어갔다"며 "시장 반등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의 한 외국인 주식영업담당자도 "오후에 투매가 나오자 외국인과 기관이 마치 작용 · 반작용 법칙처럼 저가 매수에 나서며 지수를 들어올리는 움직임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가 기술적 반등 국면에 들어가더라도 지표가 엉망으로 나오면 외국인은 언제든 주식을 내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복귀 멀었다"는 신중론도

증시 전문가들은 7월 중순 이후 매도 주체가 유럽계에서 미국계로 바뀐 점을 불길하게 보고 있다. 미국계 자금의 규모가 큰 데다 일단 매도로 방향을 틀면 장기간 지속하는 속성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펀드 소재지별로 이탈 자금을 역추적해본 결과 7월 중순 이후 미국 소재 펀드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일본 대지진 후 국내 주가 상승률이 높아 차익 실현 욕구에 노출된 데다 원화 강세로 환율 매력이 낮아진 점도 외국인 복귀를 낙관할 수 없는 이유로 제시됐다.

현대증권은 과거 외국인 매매 패턴을 감안,향후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최대 6조2000억원 수준까지 매도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5월 유럽의 신용위험이 불거졌을 때 유럽계 투자자와 헤지펀드가 각각 3조9000억원,2조3000억원어치를 팔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손성태/이태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