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기 포스텍 총장(62)은 "이공계 교육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이공계 위기가 찾아왔다"고 진단했다. 사회와 학생이 요구하는 바가 끊임없이 변했지만 대학은 거기에 발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백 총장은 "입시철에 보면 학생들의 이공계 선호가 의대에 밀리는 게 현실"이라며 "대학이 질적으로 달라지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4년간 포스텍을 이끌어온 백 총장은 오는 9월 평교수로 돌아간다. 백 총장 임기 동안 포스텍은 세계 일류대학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가 취임한 2007년에는 영국 더 타임스 세계대학평가에서 233위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28위에 올랐다. 성공한 이공계 총장인 백 총장은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두 시간 넘게 열변했다.

◆"학제 간 융 · 복합 강화 필요"

백 총장은 "이공계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학제 간 융 · 복합 과정 개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복합적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전공 하나만 공부하는 것보다는 여러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시장이 원하는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총장은 아이폰을 예로 들었다. 그는 "아이폰은 공학기술자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과 협력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각자 자기 분야를 서로에게 가르치다 끝나 버린다.

백 총장은 복합적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물리 수학 영어 등 기초 소양과목 교육 강화를 강조했다. 역사 경영 등 인문학적 지식도 빼놓을 수 없다. 포스텍은 실제로 백 총장 임기 동안 이런 방향으로 제도를 바꿨다. 기존 1년이던 기초 소양교육 기간을 2년으로 늘렸다. 교과과정에서 학생의 주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 학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였다.

◆"기술경영 교육 강화해야"

백 총장은 "학생이 스스로 창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이공계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산업화 시절에는 공대를 졸업하는 게 최고의 커리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퇴색했다"며 "더 이상 학생들이 기업 연구소에서 평생을 보내기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요구를 반영해 이공계에서도 창업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백 총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공계에서도 연구원이 아닌 방향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며 "전공지식을 이용해 창업에 성공한다면 굳이 이공계를 기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이공계 노벨상 나올 것"

지금은 '이공계 위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백 총장은 이공계의 미래에 낙관론을 펼쳤다. 그는 "지식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시장에서 원천기술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며 "지금은 위기를 맞고 있어도 이공계는 잠재력이 큰 분야"라고 설명했다.

백 총장은 한국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한국 과학자들이 인류 문명에 심대한 영향을 줄 만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연구 결과가 나온 시점부터 30~40년이 지나야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수상자가 없을 뿐이다. 그는 "단기간에는 어려워도 지금의 연구 결과가 인류 발전에 공헌을 했다는 게 증명되면 한국인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