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헤지펀드 거물인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과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차이나디스카운트(중국 기업 저평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기업의 상장을 주관하며 실권주를 인수했던 증권사들은 주가 하락으로 줄줄이 손실을 입고 있다. 중국 기업에 대한 근거 없는 선입견으로 치부되던 차이나디스카운트가 전 세계 증시에서 '차이나리스크(중국 기업 위험성)'로 바뀌는 모습이다.

◆국내 증권사 줄줄이 손실

완리인터내셔널의 코스닥시장 상장을 주관한 삼성증권은 상장 첫날인 13일 7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완리는 이날 하한가인 3275원으로 추락했다. 공모가(4100원)에 비해선 20.12% 떨어졌다. 완리의 실권주 88만3273주를 인수한 삼성증권은 첫날에만 7억원 이상의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이에앞서 신영자산운용은 차이나하오란 주식을 샀다가 20억원 안팎의 매매손실을 입었다. 이 회사는 작년 10월부터 차이나하오란 주식 8.83%를 5000원대(최고 5600원)에 사들였다. 올 들어 주가가 하락하자 3000~4000원 사이에 손절매를 하고 있다. 이달 지분율은 4.77%까지 낮아졌다. 이 과정에서 16억~30억원의 매매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증권은 3개월째 거래가 정지된 중국고섬 주식 83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 때 인수한 실권주다. 한화증권도 430만주를 들고 있다. 만약 중국고섬이 상장폐지되면 두 증권사는 각각 582억원과 38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는다.

◆피델리티 · 칼라일도 중국 기업에 물려

글로벌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도 중국 기업 투자로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다. 폴슨 회장이 14.1%를 갖고 있는 중국 벌목업체 '시노-포레스트'는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이 회사는 올 들어 81.04% 폭락했다. 일부 투자자들이 회사의 회계장부 조작 혐의를 제기한 데 이어 공매도 공세에 나선 결과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보다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롱톱파이낸셜테크놀로지의 감사인이 회사의 회계부정 사실을 폭로하고 사임한 것.주가가 반토막난 상태에서 지난달부터 거래가 정지되면서 이 회사 지분 14.5%를 보유한 피델리티도 1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장외거래소(OTC)에 상장됐던 비료업체 차이나애그리테크도 세계적 헤지펀드인 칼라일이 지분 22%를 보유한 상황에서 상장폐지됐다.
◆'디스카운트'서 '리스크'로

싱가포르 유력 매체인 스트레이트타임스는 최근 중국고섬과 훙싱스포츠,훙웨이테크놀로지 등 싱가포르 상장 중국 기업들의 회계문제를 언급하며 중국 기업들이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고섬과 관련해서는 2008년 회계문제로 상장폐지된 '페로차이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주요 주주가 2009년 싱가포르증시 상장 후 매도 제한 기간이 지나자마자 7810만주의 주식을 대거 매도한 것과 싱가포르 및 한국 거래소 상장을 통해 거액을 조달하고도 은행 대출을 추가로 받은 점이 페로차이나 사태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10일 중국 기업들에 대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회계부정 조사 착수 사실을 전하며 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지난달 상장폐지된 차이나미디어익스프레스가 단적인 예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중국원양자원을 비롯 중국주에 대한 투자 비중을 계속 낮추고 있다"며 "기관들이 중국 기업에 다시 눈을 돌리기까지는 앞으로 최소 6개월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헤지펀드까지 중국 기업에 투자했다 손실을 입고 있는 만큼 이제 국내 증시의 '차이나디스카운트'가 아니라 세계 증시의 '차이나리스크'가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