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000억 챙길 때 개미들은 대부분 '줄초상'

오는 22일로 검찰이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의 범죄 혐의를 수사한 지 한 달이 된다.

초단타 매매자인 `스캘퍼'와 증권사가 유착해 부당 이득을 취했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의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은 수백억 원대 ELW 불법매매를 공모한 혐의로 스캘퍼와 증권사 직원 등 2명을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캘퍼가 ELW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전용회선을 받아 일반 투자자보다 빠르게 주문한 덕에 고수익을 냈고, 증권사는 거액의 매매 수수료를 챙긴 의혹도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증권사가 어느 선까지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캘퍼들이 일반 투자자보다 월등하게 우월한 위치에서 수익을 낸 기형적 구조는 확실히 규명한 것이다.

◇스캘퍼-증권사 `검은 공생' 확인

스캘퍼와 증권사가 인적ㆍ물적으로 단단하게 유착한 사실이 수사를 속속 드러나고 있다.

스캘퍼를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따라 증권사 위탁매매 점유율에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각종 `당근'을 제시했다.

시스템 측면에서는 스캘퍼들에게 전용회선을 제공했다.

고객이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영업점 단말기에 주문을 내면 증권사 전산시스템 회선을 거쳐 한국거래소 시스템에서 거래가 체결된다.

이 과정에서 빠른 체결이 가능하도록 별도 회선을 배정한 것이다.

거래 수수료도 감면했다.

기본적으로 스캘퍼는 증권사에서 근무한 전문가들이다 보니 증권맨들과 선후배 관계로 엮였다.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된 이들도 증권사 재직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들은 3~5명씩 팀을 구성해 `부티크'로 불리는 사무실에 모여 초단타 매매를 했다.

여의도의 한 백화점 이름을 딴 `OO파' 등 몇개 그룹을 나눠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증권사 관계자는 "단순히 전용회선만 깔아준다고 수익을 냈다고 보긴 어렵다.

스캘퍼들은 증권사 등 유동성 공급자(LP, Liquidity Provider)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다"고 말했다.

LP는 팔려는 고객이 너무 높은 가격을 부르고 사려는 고객은 너무 낮은 가격을 제시해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을 막고자 중간 범위에 적정 매도ㆍ매수 호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스캘퍼들은 LP가 호가를 내는 패턴을 철저하게 분석해 수익을 냈다는 것이다.

증권사에서 전산업무를 담당했던 `선수'가 포함돼 매매 프로그램을 짰다.

공학도의 전문지식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LP가 호가를 부르면 신속하게 주문을 넣어 수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여기에 증권사가 제공한 전용회선이 위력을 발휘했다.

ELW 거래에서는 불과 0.01초 간격으로 승부가 나기에 스캘퍼들은 장중에는 부티크에 설치한 여러 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며 매매에만 몰두했다.

이런 방식으로 스캘퍼는 매월 1인당 억대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ELW `레버리지 배팅'만 부각해 `개미지옥' 전락

스캘퍼들이 활개를 치면서 ELW 시장은 투기판으로 변질했다.

ELW는 기초자산을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콜옵션(매수)ㆍ풋옵션(매도)과 같은 구조로, 기초자산의 위험을 줄이는 `리스크 헤지(위험 분산)' 기능이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사들여 하루를 넘겨 보유하는 금액은 1~3%에 불과하다.

대부분 스캘퍼를 중심으로 단타 매매가 성행한 탓이다.

전체 ELW 거래에서 스캘퍼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2를 웃돌았다.

스캘퍼들이 압도적인 우위에서 거래를 주도하면서 ELW 시장은 `개미들의 지옥'으로 전락했다.

리스크 헤지 기능을 상실하면서 ELW는 적은 금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레버리지(지렛대) 기능만 부각됐고, 이는 개인의 손실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됐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개인은 2006년 1천467억원, 2007년 369억원, 2008년 3천881억원, 2009년 5천186억원 등 4년간 1조903억원의 손실을 냈다.

반면 스캘퍼는 2009년 1천43억원을 벌어들였다.

LP도 2007년 648억원 손해를 본 것을 제외하고 2006년 323억원, 2008년 386억원, 2009년 1천789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ELW 거래가 늘면서 한국거래소도 180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개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스캘퍼와 증권사, 거래소가 2009년에만 약 3천억원을 나눠 가진 것이다.

여의도 일대에서는 전문 스캘퍼가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로 활동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