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평범한 것 같아도 카메라 렌즈를 통하면 특이하게 보일 때가 많아요. 사진 작가는 평범한 것에서 '영감'을 수집하는 탐험가라 할 수 있지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제 작업의 원동력입니다. "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국내 처음으로 작품전(7월31일까지)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패션 사진 작가 위르겐 텔러(47)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독일 출신의 텔러는 유명 모델 케이트 모스,파멜라 앤더슨,라켈 짐머만 등과 작업하며 세계 패션 화보계의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바이올린 활을 만드는 장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86년 런던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보그''W''i-D''퍼플' 등 패션잡지에서 활약했다. 또 루이비통,마크 제이콥스,비비안 웨스트우드,셀린,미소니,입생 로랑,푸마 등 명품업체 광고 사진으로 명성을 쌓았다.

콘탁스 G2 카메라와 35㎜ 렌즈, 외장 플래시를 즐겨 쓰는 그는 "렌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반영하지 않고 인간적인 교감을 담아내는 데 매력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모델들이 방심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 사진 기술은 매우 간단하다고 할 수 있겠죠.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잡아내려 하거든요. "

그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대상의 내면을 포착,광고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명품 마크 제이콥스를 비롯해 루이비통 등 그가 작업한 사진에는 인위적인 느낌이 없다. 일부 사진은 벌거벗은 여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그랜드 피아노 위에 벗고 누워 개구리 포즈를 취한 프랑스 여배우 샬럿 램플링의 사진,손수레에 누워있는 케이트 모스의 자연스러운 모습,마크 제이콥스 쇼핑백 속에서 다리를 쩍 벌린 데이비드 베컴의 부인,소파에 누워 담배를 피우는 호크니 등은 비밀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이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순수하다는 평가도 여기에서 나온다.

"사진은 그것이 상업적이든 예술적이든 간에 고심과 번뇌의 산물입니다. 얼핏 보면 대충 찍은 한 장의 스냅사진 같지만 그 뒤에는 굉장히 많은 고민이 숨어 있거든요. "

사진은 수많은 아이디어 과정을 거쳐 새로운 현실을 찾아내고,상품을 재해석할 수 있는 영감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는 없다고 봐요. 사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거든요. 광고나 화보,예술 사진이라고 다를 게 없지요. 갇혀진 틀 안에 저를 집어넣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

18세 때부터 사진에 빠졌다는 그는 "패션 화보를 찍을 때는 가방이나 옷에 대한 흥미보다 그것을 치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며 "중요한 것은 나와 모델 사이의 교류,전파를 통해 감정을 완벽하게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미술가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대해서는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한 그들과의 만남이 아름답고 그들에게 창의적인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디종의 유명 미술관 '르 콩소르시움'과의 협업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터치 미(Touch me)'.영국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로니 혼,리처드 해밀턴,윌리엄 이글스턴 등 정상급 미술가들의 인물화 작업,10일간 쿠바 하바나를 여행하면서 찍은 다큐멘터리 작업 등 모두 50여점이 걸렸다. 관람료 5000원.(02)720-066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