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김용섭, 팔순 회고록 펴내

김용섭(80) 전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동년배 역사학자, 예컨대 강만길(78) 고려대 교수나 조동걸(79) 국민대 교수보다는 일반에는 잘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정년퇴임 이후에도 왕성히 저작 활동을 하는 그를 최근 한 젊은 역사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숨은 신(神)'이라 부르며 비판에 나섰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김 교수가 현재 한국역사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케 한다.

이런 그가 팔순을 맞아 800여 쪽에 달하는 회고록인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지식산업사 펴냄)를 냈다.

부제가 '해방세대 학자의 역사연구 역사강의'인 이번 회고록은 그의 이름을 지울 수 없게 만든 한국 농업사 연구에 투신한 과정과 성과,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조선은 정체한 사회였다'는 식민주의 역사학의 오랜 주장을 극복한 여정 등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번 회고록에서는 1959년 이래 서울대 사범대 교수로 있다가 1966년 같은 대학 문리대 사학과(나중의 국사학과)로 옮긴 그가 왜 1975년 서울대를 떠나 연세대 교수로 직장을 옮겨야 했는지를 밝힌 대목이 무엇보다 주목을 끈다.

더는 서울대에 있을 수 없던 사정으로 김 교수는 자신이 1960년대에 전개하기 시작한 '문화 학술운동'을 들었다.

그는 이 운동을 두 가지 흐름으로 정리했다.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일제와의 관계에서 아직도 해결안된 문제, 즉, 일제강점기에 그들이 침략정책으로서 깔아놓은 식민주의 역사학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이와 아울러, 우리의 자주적인 새로운 역사학을 어떻게 건설할 것이냐 하는 두 가지로 문제로 압축하고, 그와 관련된 역사연구를 성찰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466쪽)
김 교수는 더 나아가 당시 학계에 팽배한 식민주의 역사학을 구체적으로 "한국사 또는 한국문화의 발전에는 주체성이 결여되고 있다는 타율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사에는 내적 발전이 결여되고 있다는 정체성 이론의 문제"를 들면서 이를 청산하는 일이 시급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운동 당시에는 마침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진전돼 식민주의 청산은 더욱 절박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당연히 기성세대의 반발을 불렀다.

이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서울대 문리대 내부, 특히 사학과(나중에 국사학과) 내부에서 적지 않은 알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회고록을 통해 공개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학과 동료 교수이기도 한 고 한우근과 김철준 교수에게 각각 두 번씩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김철준 교수가) 한 번은 나를 보고 웃으시며, '김 선생, 김 선생 민족주의는 내 민족주의와 다른 것 같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 그 다음은 노발대발하시며, '이○○ 선생에 대해서 무슨 글을 그렇게 써!' 하시며 질책하셨다.

마치 부하 직원이나 제자를 대하듯 나무라셨다.

전자는 경고성 발언이고 후자는 절교성 발언이라 생각되었다.

"(770쪽)
나아가 한우근은 여러 사람이 동석한 가운데 김 교수에게 "김 선생, 우리 이제 민족사학 그만하자"고 했다고 회고했다.

이번 회고록에서 놀라운 점은 당시 김 교수가 주창한 식민주의 청산운동에 그 청산의 핵심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일본의 학자들도 김 교수를 향해 압박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점이다.

"(한 번은) 너덧 명의 중년ㆍ노년 교수가 내방하였다.

노크를 하기에 문을 열었더니, 김원룡 교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제 때 경성제대에서 내가 배운 스에마쓰(末松保和) 선생님인데, 김 선생 강의를 참관코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김 선생 되겠지?' 하는 것이었다.

"(768쪽)
스에마쓰는 조선총독부 관리이자 경성제국대학 교수로서 임나일본부설을 체계화하는 등 식민주의 역사학을 제창하고 수립한 중심인물로 꼽히며, 당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인 김원룡은 경성제국대학 시절 그의 제자였다.

이런 식으로 학교 안팎에서 압력이 거세지자 "그리하여 나의 문화 학술운동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서울대학교의 관악산 이전을 계기로 나도 이 학교를 떠났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서울대를 떠난 그는 서울대 사범대 시절 스승인 고 손보기 교수가 재직 중인 연세대 사학과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가 1997년 정년퇴임과 더불어 물러났으며 2000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됐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