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영자 씨(48)는 평소 술 담배는 입에도 못 댔는데 지난 겨울 감기에 걸린 후 기침이 멈추지 않아 병원에 가서 흉부 X-레이 사진을 찍어봤다. 왼쪽 폐에 물이 가득찬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으니 안타깝게도 폐암 4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유전자 검사 결과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었다. 최신 표적항암제는 이 유전자 돌연변이에 반응하는 치료제여서 기존 독한 항암제보다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이 약은 이달부터 보험이 적용돼 경제적 부담을 덜었다. 김씨는 하루에 한 알씩 약을 먹은 지 1주일 만에 폐에 가득 찼던 물이 빠지고 기침도 하지 않을 정도로 호전됐다. 아직까지는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부작용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폐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며 국내에서 사망률 1위를 기록하는 암이다. 중앙암등록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폐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1만8774명으로 인구 10만명당 38명꼴로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위암 갑상샘암 대장암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이 생기는 암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암으로 사망한 환자 6만9780명 중 폐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21.4%인 1만4919명으로 2000년 위암을 제치고 사망률 1위를 차지한 이래 현재까지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폐암 사망률이 높은 것은 질병 초기에 자각 증상이 없다가 기침,각혈,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폐암도 초기에 발견하면 수술이 가능해 완치율이 75%를 넘는다. 그러나 수술할 수 있는 경우는 전체 폐암 환자의 20~25%밖에 되지 않는 게 문제다.

폐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흡연이다.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자에 비해 13배 정도 높고,하루 2갑씩 20년간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무려 60~70배나 높아진다. 담배에는 타르를 비롯해 20여가지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피우는 담배연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만 해도 폐암에 걸릴 확률이 1.5배 높아진다.

폐암 중 선암(線癌)은 '선진국형' 폐암으로 불린다. 이는 간접흡연에 의해 비흡연자의 선암 발생이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선암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세브란스병원 폐암클리닉은 저명한 종양학 국제학술지인 임상암저널(JCO)에 간접흡연이 폐암 발병률을 높이는 것은 물론 비흡연 폐암 환자에게서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성분명 게피티니브)와 같은 표적항암제의 치료 효과를 떨어뜨린다고 보고해 간접흡연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폐암은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한다. 조직을 얻기 위해서 기관지 내시경,세침흡인술,수술 등의 방법을 쓰지만 때로는 가래나 흉수(폐 바깥쪽에 고인 물) 검사로 암세포를 확인해 진단한다. 이렇게 폐암이 확진되면 병기(病期)를 결정하기 위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뇌 자기공명영상(MRI),뼈 스캔 등을 시행해 전이 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 방향을 정한다.

폐암은 병리학적으로 크게 비소세포폐암과 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비소세포폐암은 다시 선암,편평세포암,대세포암 등으로 세분된다. 이런 분류는 그룹별로 환자의 임상 양상과 치료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체 폐암의 15~20%를 차지하는 소세포폐암은 암세포의 증식이 빠르고 초기에 잘 전이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병이 한 곳에 국한돼 있더라도 수술하지 않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시행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이 같은 복합요법에 놀라운 반응을 보이지만 일정 기간 후 재발하는 비율이 높고 일단 재발 후에는 약제가 잘 듣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반면 비소세포폐암은 수술이 가능하다면 외과적 절제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병기가 1기,2기,3기 초라면 외과적 절제를 하고 암이 생긴 폐를 부분적으로 혹은 전부 절제하고 근처의 림프절도 같이 제거하는 게 최선이다. 수술 후에는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보조적인 항암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3기로 병기가 진행하는 양상이면 수술 전에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시행해 병변의 크기를 줄이고 나서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 3기로 수술적 절제가 불가능하다면 완치를 목적으로 항암 · 방사선 동시 요법을 시행한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4기 폐암은 항암화학요법이 현재 표준 치료법이다.

전통적인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동시에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미쳐 구토 통증 탈모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최근 다양한 표적항암제 신약이 개발되면서 치료 효과는 올라가고 부작용은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Biomarker)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표적치료제를 선택하는 맞춤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폐암 치료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대표적 폐암 표적치료제인 이레사는 EGF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들에게 표준 항암화학요법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효과를 보였다. 하루 한 번 경구 복용이 가능하며 항암화학요법에 비해 구토나 탈모 등의 부작용이 적어 일상생활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국내에서는 2010년 4월 1차 치료제로 승인받았고,올해 4월부터는 보험 급여가 확대돼 폐암의 맞춤 표적치료가 더욱 용이해졌다.

또 다른 맞춤 표적치료제로 역형성림프종키나제(ALK) 억제제인 크리조티닙이 있다. 비록 전체 폐암 환자의 3~5% 정도만이 이 약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ALK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유하지만 적합한 환자에게 투여하면 아주 뚜렷한 종양성장 억제 효과를 관찰할 수 있다. 조만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시판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폐암 치료법이 발전하고 있지만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예방법은 금연이다. 간접흡연도 해롭기 때문에 가족이나 직장 동료 중에 흡연자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금연을 권유하도록 한다.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인 라돈 석면 니켈 비소 등에 노출되지 않게 보건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흡연과 관련된 전형적인 오해 중 하나가 순한 담배나 필터담배는 괜찮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런 담배는 무의식적으로 깊게 담배연기를 들이키게 해 악영향이 더 클 수 있다. 또 하루에 피우는 양을 줄인다고 해서 결코 폐암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폐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기검진법이 정립돼 있지 않다. 다만 장기간 흡연을 해온 고위험군의 성인이라면 방사선 피폭량을 줄이고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는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을 주기적으로 받을 것을 권장한다.

김주항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폐암전문클리닉팀장 교수(종양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