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80엔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엔화는 16일 뉴욕 외환시장 전자거래에서 한때 달러당 76.25엔까지 치고 올라 고베 지진 직후인 1995년 4월19일 79.75엔의 역사적 고점을 깨고 전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제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달러당 79~79.5엔 사이에서 움직이며 시종 강세를 유지했다. 고베 지진 후 2개월간 엔화가치가 18%나 급등했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더구나 일본은행이 무려 33조엔을 퍼붓는 상황에서 나타난 엔 초강세다.

대재난에 직면한 일본의 엔화가 되오르는 이유는 천문학적 복구 비용과 보험금 지급 등을 위해 세계시장에 나가 있는 엔화가 급거 일본으로 환류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또 이런 예상이 당장의 환투기를 조장하고 있다. 일본의 순대외 채권이 무려 3600조원에 달하는 만큼 신규 외채 없이도 피해복구 비용을 자체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또 다른 이유다.

문제는 엔화 강세는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청산을 가속화한다는 데 있다. 엔캐리 자금은 금리차이와 환차익을 동시에 노리는데 엔화가치가 올라가면 그만큼 환차손이 커지게 되어있다. 바로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엔강세-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엔강세'의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고베 지진 후에도 이런 경로를 통해 엔 강세가 진행됐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7조3500억원가량으로 추정되는 한국 주식 투자액을 비롯해 신흥국 투자자금의 이탈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엔캐리 자금은 그림에서 보듯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도 급감했는데 당시 세계증시의 하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 신흥국 증시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투자 대상국의 채권 가격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각국의 금리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포르투갈의 신용등급 하락,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뒤숭숭한 마당에 금리까지 오른다면 글로벌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엔화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엔화강세는 머지않아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면서 급격한 약세로 반전될 수도 있다. 엔화가 긴 약세 국면으로 돌아선다면 이 또한 우리에게 좋을 게 없다. 확실한 것은 당분간 외환이나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뿐이다. 급격한 환율 변동에 말려들지 않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발빠르게 대처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