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ㆍ북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2011년판 오일쇼크'가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3일(현지시각)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리비아의 석유 생산이 '반토막'나는 등 중동의 불안정이 유가 상승을 불러오고 있지만 지난 2008년의 '초고유가 시대'보다는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무는 등 시장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온건하다.

이에 따라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고유가로 세계경제 성장률이 소폭 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회복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위험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경고했다.

우선 석유 산업의 특성상 심각한 공급 차질이 실제로 빚어지지 않아도 그러한 우려만으로도 유가가 치솟을 수 있다는 것.
세계 석유 생산량이 7.5%가량 감소한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달리 리비아 사태로 인한 세계 생산량 감소는 1%에 그칠 정도로 지금까지는 석유 공급상의 타격은 미미한 수준이다.

또 현재는 정부 비축분, 상업적 석유 재고량 등 다양한 완충장치가 있으며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도 여분의 생산능력이 충분하며 증산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우선 알맞은 종류의 석유를 알맞은 시간에 알맞은 장소에 공급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석유 산업의 고도로 복잡한 특성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문제는 사우디로, 청년층의 체제에 대한 반감 등 이미 격변에 휩싸인 다른 중동 국가들과 같은 특징이 많아 사우디의 불안 조짐만으로도 세계 석유 시장에 패닉이 확산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관측했다.

또 세계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로 석유 수요 증가가 공급 증가를 앞선 상황이어서 중동의 작은 불안이 이미 진행 중인 유가 상승세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위험성은 고유가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해 통화긴축을 야기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회복을 좌초시킬 가능성이다.

세계 산업이 1970년대보다 덜 석유집약적이 됐고 인플레이션도 아직 낮은 수준이어서 세계 경제가 당시보다 고유가에 내성을 갖게 됐다는 사실은 다소 위안이 되지만, 당시보다 덜 취약하다는 사실이 면역을 갖게 됐다는 뜻은 아니다.

고유가는 세계 수요의 감소를 통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데, 통상 경험적으로는 유가가 10% 상승하면 세계 경제 성장률을 4분의 1가량 낮추는 경향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현재 세계 경제 성장세가 약 4.5%임을 감안하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한 2008년의 최고점 이상으로 뛰면 세계 경제 회복세를 끝장낼 수 있으며, 이 이하의 유가 상승도 경제 성장을 약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예측했다.

특히 가장 취약한 지역은 바로 중동으로, 중동 각국 정부들은 정치적 불안을 누르기 위해 식량ㆍ연료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유가가 올라갈수록 보조금 부담도 커져 정부 재정을 거덜내게 된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중동에서 고유가가 정치적 불안을 낳고, 정치적 불안이 유가를 더욱 끌어올리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경고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가에서도 고유가가 식량 가격 상승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으며 통화 정책도 여전히 너무 느슨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유럽도 고유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통화긴축 등 선제적 행동을 너무 미리 취함으로써 여전히 취약한 경제를 다시 경기 후퇴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우려했다.

다만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은 수준이고 경제도 상당히 부진하기 때문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무시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낙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 관련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한다 해도 세계 경제가 단기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인식하는 것보다 불안정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세계가 이번 2011 오일쇼크를 계기로 전기자동차 인프라 투자, 탄소세 부과 등을 통해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개혁에 나설 수 있다는 희망적인 측면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j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