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노동인구 줄어드는 선진국 … 고령화가 세계경제 판도 바꾼다
2006년 아흔일곱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작고한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는 세상을 뜨기 10년 전 "젊은이들이 '아직 증후군(still syndrome)'에 걸렸다"고 꼬집었다. "아직도 일하세요?" "아직도 운동하세요?"라며 나이 든 사람들의 노쇠현상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괴롭힌다는 것.갤브레이스는 그런 젊은이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자네는 '아직' 철이 덜 들었구만."

그러나 앞으로 20년쯤 후에는 "아직도 일하세요?"라고 묻는 것이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인구의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생산인구가 줄면 노동력 확보를 위해 정년을 연장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일하는 노인이 흔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고령화가 경제적 · 사회적 ·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를 유발하는지 전망하고 분석한 책이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UBS투자은행 선임 경제고문인 저자는 "고령화 논란의 핵심은 돈"이라고 단언한다. 고령화는 경제문제라는 얘기다.

그는 이 책에서 고령화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생산인구 감소로 고령인구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저축감소,연금과 의료비 같은 고령화 관련 지출로 인한 정부의 공공지출 증가,고령화에 따른 물가와 자산가격의 변화,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고령화 진행 정도 차이에 따른 노동력 이동과 세계경제 판도 변화 등 실로 다양하고 폭넓은 문제들이 고령화와 맞물려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네 가지다. 정년 연장,생산성 향상,인구규모 유지,연금재정 확보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 총인구에서 노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향후 30~40년 동안 현재와 같이 유지하려면 서구사회는 정년을 3~10년 연장해야 하는데 논란의 여지가 많다.

생산성 향상 또한 기업의 투자와 혁신,국민들의 저축,법과 제도의 지원 등과 맞물려 있어 단기간에 기대하기 어렵다. 이민을 대폭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일시적으로는 노동인구가 늘고 출산율도 올라가겠지만 이민자 대부분이 저임금 노동자라면 세수 기여는 적은 반면 복지 지출은 늘어날 수도 있다.

선진국에 비해 고령인구가 적은 개도국에는 고령화가 기회일 수도 있다. 2006년 현재 선진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20%.개도국은 2050년에 이 비율에 이르기 때문에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이익,즉 '인구구조 배당금'을 챙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개도국의 고령화는 이전보다 속도가 빨라서 2030~2050년 이전에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고령화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고령화를 세계가 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이 출산율을 낮추고 고령화를 가속화해 이미 인구구조 배당금을 다 썼다는 것.따라서 중국의 '값싼 노동력'이 줄어들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이 국내 물가 상승,수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세계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소비 지향 사회로 바뀌고 고령화 관련 지출이 늘어나 세계에 공급하는 자금이 줄 경우 국제자본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아프리카의 경우 에이즈가 걸림돌이다. 지금부터 2025년까지 세계인구는 27억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 절반이 아프리카 · 중동에서 태어나고 생산 가능 인구는 10억명 가까이 증가해 총부양비가 대폭 줄어든다. 고유가와 식량가격 상승,중국을 비롯한 대 아시아 무역,국제사회의 외채 탕감 노력 등은 아프리카의 경제발전 전망을 밝게 한다. 그러나 연간 아프리카 사망자의 30~40%가 에이즈나 말라리아로 죽고,에이즈 사망자 대부분이 15~29세 청소년과 청년층인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는 인구구조배당금을 탈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