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농장 대표 "35년 피땀흘려 일궈온 기반 한순간에 묻힐 판"
횡성 사육 돼지 66% 살처분..지역 양돈산업 존립 기반 '흔들'

"35년간 청춘을 다 받쳐 피땀으로 일궈온 축산기반을 송두리째 땅에 묻으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5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에서 기업형 돼지 농장을 운영 중인 S 영농조합법인 대표 김모(57)씨는 3만3천900여마리 중 10마리가 구제역 양성이라는 판정을 받자마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묘년 새해 벽두인 지난 1일 원주시 소초면 평장리와 경기 여주의 자신 소유 농장 2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돼지 1만7천여마리를 대량 살처분한 지 나흘 만의 또다시 '청천벽력'을 맞았기 때문.
작년 11월 말 국내 첫 구제역 발생 이후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자신의 농장만큼은 빗겨가기를 고대했던 김 씨는 지난 35년간 청춘을 바쳐 매진해 온 축산 기반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다.

김 씨는 "원주와 횡성에 있는 두 농장이 불과 20여㎞ 떨어져 있는데다 톱밥 운반차량 등이 드나들어 차단 방역에 안간힘을 기울였지만 끝내 구제역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긴 탄식을 토해냈다.

이로써 도내에서도 손꼽히는 기업형 양돈 업주인 김 씨는 경기 이천, 원주, 횡성, 춘천, 강릉 등 5곳의 농장에서 사육 중인 6만여마리 중 83%인 5만여마리의 돼지를 한꺼번에 잃게 됐다.

김 씨가 양돈산업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35년 전인 1976년. 당시 S그룹이 경영하는 농장에 취업해 생산 관리자로 일하던 김 씨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2차례에 걸친 뇌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후 김 씨는 1987년 경기 이천에 작은 돼지농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양돈사업에 뛰어들었고, 10년 만인 1997년 사실상 혼자 힘으로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구제역이 발생하기 이전까지 김 씨는 원주, 춘천, 강릉 등으로 농장 규모를 늘려 종돈과 비육돈을 포함해 모두 6만여 마리를 사육하는 도내에서 손꼽히는 기업형 농장주로 성장했다.

그동안 김 씨는 1997년 국제구제금융(IMF) 사태와 2007년 세계 곡물 파동 등 수많은 위기에 봉착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난관을 극복해냈다.

그러나 이번에 번진 구제역은 축산업에서만 35년간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양돈인에게 가장 큰 시련을 안겨주고야 말았다.

김 씨는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와 강원지역 3개 농장의 피해액은 모두 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며 "무엇보다 횡성 농장은 종돈장으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크고, 재입식 등 재기까지는 4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축산업의 후진국이나 다름없는 국내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숱한 어려움도 다 이겨냈는데 이번 구제역은 온몸으로도 막아 낼 수 없었다"며 "자식같은 가축을 땅에 묻고 텅 빈 축사를 바라보는 것도 찢어지는 아픔이지만 더 큰 고통은 120여명에 가까운 직원들의 70% 이상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횡성군으로서도 지역 내에 사육 중인 5만9천990여마리 가운데 66%에 해당하는 김 씨 농장 돼지 3만9천600여마리를 살처분함에 따라 지역 양돈산업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됐다.

횡성군 조우형 축산과장은 "대규모 종돈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다 보니 지역 축산업 존립기반이 흔들리며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며 "지금까지 시.도간, 마을과 농장간 이중, 삼중의 차단방역을 시행했는데 이같은 일이 발생해 허탈하다"고 말했다.

(횡성.원주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