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죄다 저 나름의 신(神)을 갖고 있단다. " "그럼 신은 어떤 말을 써요?" "신은 가슴의 말을 들으셔."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PIFF)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카자흐스탄,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에 나온 카자흐스탄 할아버지(카심)와 유대인 소년(사쉬카)의 대화다.

배경은 스탈린 정권에 의한 소수 민족의 중앙아시아 지역 강제 이주가 한창이던 1949년 카자흐스탄의 한 마을.영화는 현지인과 각지에서 쫓겨온 사람들이 섞여 살던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핵실험의 끔찍함과 민족 · 종교 · 문화를 초월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부산국제영화제(PIFF) 개막식의 즐거움은 바로 이처럼 색다른 영화를 만나는 데 있다. 개막작 선정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의 성격은 물론 작품성과 화제성,다른 영화제와의 차별화,초청작 관련 인사의 지명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창설 첫해인 1996년의 '비밀과 거짓말'(영국)은 물론 '흑수선'(한국) '고요'(이란) '레슬러'(인도) '도플 갱어'(일본) '2046'(홍콩) '집결호'(중국) 등 주목받은 개막작 모두 그처럼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인가. 이들 작품은 아시아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어떻게 다른지,영화의 본질과 지향점은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올해 개막작 '산사나무 아래'도 마찬가지다. 명장 장이머우 감독이 만든 영화는 지극히 단순한 소재에도 불구,보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내용은 젊은 남녀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영화는 손만 잡고 끝난 사랑이 얼마나 절절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편 감동이란 다름 아닌 소박한 진실에서 우러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개울을 건너면서 손 잡기가 쑥스러워 막대기를 양쪽에 잡고 건너던 이들이 손을 조금씩 막대기 가운데로 옮겨가다 마주 잡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다. 하는 수 없이 헤어지기 전 여자의 다친 발에 붕대를 감아주는 청년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관객의 목까지 메이게 만든다.

다들 잃어버린 순수함을 떠올렸던 걸까,상영 도중 일어선 사람이 많았던 지난해와 달리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간간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을 뿐. 한 가지 여주인공의 얼굴이 너무 어려 보이는 건 눈에 거슬린다. 그래도 그쯤이야.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