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랗게 펼친 흰색 도포에 투사된 비행선에서 헬기와 글자들이 떨어지며 도포자락에 산수화를 그려낸다. 9 · 11 테러로 무너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1m 높이로 만든 미니 모형에도 산수화가 투사된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씨(41)의 영상 설치 작품 '9 · 11-치유'(사진).서양에서 일어난 테러를 동양 회화로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조선시대 선비의 옷에 영상화한 작품이다. 세필로 그린 회화보다 더욱 생생하고 영상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씨는 오는 13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선미술상 수상 기념전을 펼친다. 그는 올해로 22회째인 선미술상이 기존의 한국화,서양화,조각 부문에 더해 신설한 설치 및 디지털테크놀로지 부문의 첫 수상자다. 원래 조각을 전공했던 이씨가 영상미디어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대학에서 미술 해부학을 가르치다가 어깨 너머로 한 학생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보고 나서부터다.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 2004년 단원 김홍도의 '묵죽도',신사임당의'조충도',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영상 작업으로 형상화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동안 동 · 서양의 고전 명화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비롯해 소재와 표현 방식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모바일 앱아트 작품 등 20여점을 보여준다.

"모니터라는 평면 조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그는 LCD 모니터나 TV가 아닌 입체를 화면으로 삼은 작품들을 내놓는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애플의 태블릿 PC인 아이패드를 이용한 작업이다.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Media Art HD'라는 앱을 내려받으면 그가 2008~2009년 제작한 일부 작품을 아이패드로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의 크기와 분량을 줄인 버전이긴 하지만 전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을 모바일 기기로 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전시장에서도 아이패드로 작품을 볼 수 있다. 작품 3개로 구성된 무료 버전과 2.99달러에 12개 작품을 볼 수 있는 유료 버전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앞으로 아이폰이나 삼성전자의 태블릿 PC인 갤럭시 탭 용으로도 출시할 예정이다. 이 밖에 프랑스 점묘파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년)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와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남농 허건의 산수화와 데미안 허스트의 '닷' 페인팅이 한 화면에서 움직이며 결합하는 '크로스 오버 쇠라'처럼 기존 명화들을 재해석한 작품도 관심을 끈다.

머털도사나 맹꽁이 서당,고인돌 같은 옛 만화 캐릭터들과 산수화 속에 등장하는 만화 병풍도 출품된다. (02)73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