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arcades)는 1822~1837년 파리 대로변의 건물과 건물 사이 통로를 상점으로 꾸민 길거리 마트였다. 이는 당시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와 유행,패션을 선도하며 프랑스인들에게 자본주의의 환상과 꿈을 심어줬다. 지금도 파리 중심가에는 대형 아케이드들이 남아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이색적인 주제를 내건 전시회가 4일 서울 삼성동 아트컴퍼니 인터알리아(대표 김종길)에서 열린다.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소재로 한국 현대미술의 몽타주를 그려낸 기획전이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조각가 이재효씨를 비롯해 박선기,김희선,정진용,강유진,박상희,이여운,이상원,장석준,한성필씨 등 10명이 회화와 조각,설치,사진 100여점을 출품한다. 전시장도 아케이드처럼 꾸몄다. 길거리에서 쇼핑하듯 한국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서양화가 강유진씨(34)는 중첩된 이미지와 흘러내리는 기법으로 스펙터클한 도시의 욕망을 형상화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공항과 빌딩,수영장,백화점 쇼윈도,갤러리 전시장 등 도시를 대표하는 장소를 화면에 되살려내 현대인의 과도한 소비 욕구를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영상 설치 작가 김희선씨(45)는 1925년 이후 6 · 25전쟁을 제외하고 한번도 멈춘 적이 없는 서울역의 시계를 통해 도시와 개인의 삶을 들춰낸다. 그의 '서울역 시계'는 끊임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역 주변의 건물과 시계에 초점을 맞춘 작업으로 도시 단면과 개인의 기억들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중견 조각가 이재효씨(46)는 통나무,돌,쇠붙이 등 버려진 것들을 모아 둥근 공이나 원뿔 형태로 허공에 매달았다. 도시에 묻혀진 사물에 원초적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숯 작업으로 주목을 받아온 조각가 박선기씨는 투명한 낚싯줄에 숯을 엮어 공중에 설치했다. 사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착시 현상을 통해 불안한 도시인들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회화 작가 박상희씨(40)는 영화 포스터나 패스트푸드점 간판과 같은 도시 단면들을 형상화했다. 시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형상을 그린 후 부분적으로 벗겨가면서 도시의 팽창과 인간의 소외감을 동시에 꼬집는다. 사진 작가 장석준씨(30)는 서울의 공장 지대와 윤락가,골목길을 촬영한 콜라주 작품을 보여준다.

이 밖에 정진용씨(39)는 동서양의 고궁과 성당,도심 건축물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화면에 담아냈고,이여운씨(37)는 고층 빌딩들을 수묵 작업으로 묘사했다.

김종길 대표는 "이번 기획전은 한때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이었던 아케이드 의미를 한국 현대미술로 치환한 것"이라며 "관람객들에게 19세기 파리와 21세기 서울을 잇는 거대한 미학 통로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24일까지.(02)3479-0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