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를 현 주가보다 50% 이상 싸게 발행하는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가 잇따르면서 주주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주주배정 증자는 일반 증자와 달리 신주 발행가격에 제한이 없지만,지나친 할인 발행은 오히려 물량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주배정 증자 발표 건수는 지난달 14건에 이어 이달에도 보름간 8건에 달하고 있다. 금감원이 한계기업의 일반공모 증자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면서 대안으로 대규모 주주배정 증자를 진행하는 상장사들이 늘고 있다. 실제 10억원 미만 소액 공모가 적지 않은 일반공모 증자는 지난달 14건에서 이달 들어 3건으로 급감했다.

특히 신주를 지나치게 할인해 발행하는 주주배정 증자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주주배정 증자기업 41개사의 평균 할인율은 35.7%에 달했다. 주주배정 증자에서 신주 가격은 일반공모(할인율 30% 이내)나 3자배정(10% 이내) 방식과 달리 자율 결정된다. 지난해 2월 자본시장법 도입과 함께 신주 발행가격을 정하기 위한 기준가 산정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할인율이 50% 이상인 기업들도 적지 않다. 19일 신주 600만주가 상장될 예정인 보성파워텍의 신주 발행가는 3215원으로 증자 발표일 당시 주가(655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슈넬생명과학 에임하이 이화전기 등도 마찬가지 사례다.

주주배정 증자 전후로 감자나 주식병합 등을 결정하는 상장사는 '착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신주 발행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중순 신주 7799만주가 상장된 이앤텍은 주주배정 증자 발표 당시 신주 발행가가 500원(액면가)으로 당시 주가(100원)보다 크게 높았다. 하지만 앞서 20 대 1 감자를 결정한 상태여서 실제 신주는 감자 후 수정 주가(2000원) 대비 75%나 할인해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자를 진행 중인 베리앤모어도 감자와 주식분할을 감안하면 신주 발행가가 발표 당시 주가의 반토막 수준인 것으로 계산된다.

문제는 지나친 할인율을 적용할수록 주주들의 선택폭이 적어져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가령 75% 할인율이 적용된 이앤텍의 경우 주주들로선 기존 보유주식 가치의 희석화를 막기 위해 증자 참여가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증자 규모가 390억원으로 주당 신주 21.7주가 배정돼 주주들의 청약률은 33.9%(나머지는 실권주 3자배정 발행)에 그쳤다. 결국 주가는 지난달 신주 상장을 전후해 8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전략 담당 이사는 "증자가 절실한 기업일수록 신주 할인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주주배정 증자 할인율은 20~30%가 적당하다"며 "지나친 할인율이 적용되면 주주들은 싼 가격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물량 부담이 커지고 가업가치 증대로 연결될 가능성이 낮아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